기침과, 가난과, 사랑은, - 후기
기침과, 가난과, 사랑은, 시리즈를 끝내고 쓰는 후기입니다. 오랜간 붙잡고 있던 시리즈였기 때문에 나중에라도 지금의 기분과 마음을 되짚어보기 위한 기록으로서 또 이렇게 자판을 두들깁니다. 할 이야기가 많다보니 장문의 후기가 될 것 같습니다. 그러니 지금까지의 그 모든 후기들처럼, 이것 역시 걸러들으시거나, 거르고 안 읽어 주셔도 됩니다. 후기는 모다? 뽀너스 스테이지다. 지금까지의 후기들은, 시리즈를 마치고 홀가분한 마음에 후루룩 썼던 것 같은데. 이번 후기는 조금 제게 다가오는 느낌이 다르네요. 남기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나도 많은데, 그래서 더더욱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모를 기분입니다. 그 막연한 기분에 이번 후기는 시리즈를 마친 후로도 한동안 안쓰고 도망을 다니다 일주일은 훌쩍 넘어서야 겨우 이렇게 붙..
2020. 8. 7.
[국홉] 기침과, 가난과, 사랑은, #19
by Impulse "...야." "...예에." "야, 이 씨벌놈아." "...예에..." "이 꼴 보이냐? 보이냐고오." "죄송함다." 정국은 병실 침대 옆에 붙어 앉아 시뻘건 얼굴로 씩씩대는 김경장의 화풀이를 고스란히 받아내고 있었다. 화가 날 만도 하다. 지붕에서 떨어지기는 같이 떨어졌는데 한 사람은 왼쪽 쇄골서부터 팔, 그리고 갈비뼈까지 복합골절을, 다른 한 사람은 무슨 일이라도 있었냐는 양 멀쩡하니 말이다. 게다가 그렇게 된 연유는, 김경장이 정국의 인간 쿠션 역할을 아주 제대로 했기 때문에. "니 떨어지면서 일부러 내 위로 떨어졌지? 너 나랑 떨어지면서 눈도 마주쳤잖아. 내 멱살도 잡고, 어? 이 새끼야, 어? 어?" ".......아잉데여?" "아니긴, 뭐가 아ㄴ...!!!! 으흐억, 옆구..
2020. 8. 2.
[뷔홉] 기침과, 가난과, 사랑은, #17
by Impulse 콜록, 콜록, 콜록, "너 요즘 왜 그렇게 기침을 많이 해?" "글쎄요... 올해는 감기가 빨리왔나..." '익숙해짐' 이란 말을 달리 치완하자면, '둔해짐' 이라고도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한데서 자서, 또는 저를 찾아 뛰어다니느라 힘들어서 나온 것에 불과하다던 태형의 마른기침은, 어느 틈엔가 서서히 일상생활 속으로 녹아들어와 있었다. 처음에는 찬 물로 씻고 나온 후 얼마간. 그러다가 언젠가부터는 잠들기 전에도 얼마간. 그것이 이제는, 밖에서부터 들려오는 기침 소리만 듣고도 태형이 일을 마치고 골목길을 따라 걸어오고 있다는 것을 호석이 알 수 있을 정도까지. 그 기침소리는 이젠 환청이 들릴 정도로 호석의 귀에 달라붙어, 어떨 땐 태형이 없음에도 기침 소리를 들은 듯한 착각에 주위를..
2020. 7. 23.
[국홉] 기침과, 가난과, 사랑은, #15
by Impulse 하필 비번인 이른 아침, 늦잠을 계획하며 이불 속에서 단잠에 빠져있던 정국의 정신을 뒤흔드는 전화벨 소리가 천둥처럼 울려댔다. 아니, 정말 하늘이 무너질 것처럼 천둥이 치기도 하였다. 비도 많이 오는데 이 아침에 무슨 전화냐 꿍얼거리며 잠에 취해 정신이 없는 상태로 수화기를 받았을 때, 그 너머에서 다급한 선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야, 전순경아!!! 태풍 때문에 지금 물난리 났어, 임마!!! 장비 챙겨 입고, 사람들 국민학교로 대피시켜!! 얼른!!!" 그 말이 꿈인지 뭔지 분간이 안 가 대답도 없이 멍하니 눈만 끔벅대고 있으니 이번엔 수화기 너머로부터 귀를 터뜨리기라도 할 듯 온갖 쌍욕들이 날아들었다. 동시에 까드드득, 하늘이 쪼개지기라도 하듯 울려 퍼진 우레 소리와, 옥탑방 천장..
2020. 7. 10.
[뷔홉, 국홉] 기침과, 가난과, 사랑은, #14
by Impulse 언제부터였을까. 이 끝을 알 수 없는 악순환의 연속은. 거의 매일이 전쟁이었다. 눈만 마주치면 호석은 잔소리를 하고 들었고, 태형은 지지 않고 고함을 치며 반박을 했다. "형은, 그림을 그리지 않는 나는 좋아해 줄 수 없다는 거네요? 예, 잘 알겠어요." 그 오해 섞인 못된 말을 매번 방패처럼 들이밀며 저를 궁지로 몰아넣고, 그런 게 아니라고 매달리는 저를 보며 내심 안도하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더 이상 저의 말은 듣고 싶지 않다며 어디론가 나가 버리고. 그런 저와 태형의 엇나간 말과 행동은 모두 자신의 말과, 자신의 마음과, 자신의 가난의 탓임을 알기에 미안해하고. 어떤 때는 새벽녘에 몰래 들어와 서늘한 부엌 구석에서 몸을 잔뜩 웅크린 채로 콜록대며 잠이 든 태형을 발견하기도 하고, ..
2020. 6. 24.
[뷔홉] 기침과, 가난과, 사랑은, #13
by Impulse 기어이 태형은 휴학을 하겠다는 고집을 꺽지 않았다. 졸업할 때까지의 학비와 생활비는 스스로가 벌겠다며, 태형은 일주일에 나흘은 노동판으로 일을 나갔고, 나머지 날들은 집에서 몸을 쉬거나 그림을 그리곤 하였다. 처음에는 그럭저럭 괜찮았다. 오히려 둘이서 같이 보내는 시간도 늘고, 태형도 몰랐던 것들을 많이 알게 되었다며 꽤나 긍정적인 기운이 넘쳤었다. 더 이상 학교에 관한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일하는 곳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나 어떤 일을 하고 왔는가, 어떤 일이 더 벌이가 좋은가, 어떻게 해야 일의 요령이 느는가 등에 대해 신이 나서 이야기를 하는 때는, 자기도 확실히 아는 이야기라 맞장구도 칠 수 있고 정보도 줄 수 있어 오히려 전보다도 더 즐거웠었다. 몇 달은 그랬었다. 처음 몇..
2020. 6. 20.
[국홉, 뷔홉] 기침과, 가난과, 사랑은, #12
by Impulse 최근 사흘간 호석은 대체적으로 기분이 좋지 않아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이번 주부터 시작된 하수도 공사가 하필이면 정비소 근처에서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위이잉 위잉 포크레인 소리와 쿵쿵 쾅쾅 무언가 두들겨 부수는 소리, 드드득 다다닥 드릴로 바닥을 파내는 소리가 아침 출근해서부터 저녁 퇴근할 때까지 계속되다 보니 노이로제가 걸릴 지경이라고, 입 끝을 축 늘어뜨린 호석이 그렇게 투덜거린다. 호석의 기분이 엉망인 것과는 별개로, 정국은 대체적으로 기분이 몹시 들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소음과 땅에서부터 울려오는 진동을 참다못한 호석이 하루가 멀다하고 파출소로 피난을 왔기 때문이다. 정비소 철문까지 닫아걸고는, 무슨 일이 있으면 파출소로 찾아오라는 쪽지까지 붙여놓는 철저함까지...
2020. 6. 16.
[국홉/뷔홉] 기침과, 가난과, 사랑은, #07
by Impulse 매번 순찰을 핑계로 나가 돌아다녀도 별 일 없는 한가하고 평화로운 파출소이긴 해도, 가끔은, 아주 아주 가끔은, 그래서는 안되는 날이 있다. 예를 들면, 무슨 국회의원 나부랭이가 민생을 살핀다는 명목으로 허례허식을 챙기러 온다는 소식이 떨어진다던가 하는 그런 날 말이다. 그럴 땐 멀쩡한 파출소 책걸상의 위치를 이래저래 바꾼다던가, 안그래도 깨끗한 파출소 안을 더더욱 깨끗하게 만들어야 한다던가, 이쪽에 있는 서류 뭉치들을 저쪽으로 옮기다던가, 아무튼 쓸데없는 푸닥거리를 하느라 정신이 쏙 빠진다. 그 일이 끝나는대로 해방이나 되면 좋겠지만, 선량한 동네 주민들로부터 의원의 안전을 보호해야 한다는 모순 투성이 명목 하에 망할놈의 의원을 따라 이리저리 끌려다니기까지 해야 하니, 하루가 그렇게..
2020. 4. 27.
[국홉] 기침과, 가난과, 사랑은, #02
by Impulse 괜히 미아 보호 기록부를 펼쳐보며 혼자 감상에 빠졌다가, 괜히 그 사람이 누웠던 소파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괜히 그 사람을 업고 왔던 골목길을 혼자 걸어보다가, 괜히 그러게 되는 것들. 정국이 호석을 다시 마주치게 된 것은, 개나리 가지들이 샛노란 별 모양의 꽃들을 폭포수처럼 흐드러뜨리고 있는 높다란 담벼락 밑에서 우연히였다. 남색 작업복을 입고, 손에는 목장갑을 끼고, 뺨에는 한줄기 기름때를 뭍히고, 제 머리 위로 쏟아지는 듯한 개나리를 올려다 보고 있는 것을 우연히. 쨍하니 맑은 봄날이었다. 자전거를 타고 내리막길을 따라 파출소로 향하던 중이던 정국은 허겁지겁 브레이크를 꽉 눌러 잡았다. 끼이익, 하는 귀를 긁는 마찰음을 내며 자전거가 덜컥, 하고 그 자리에 멈춰섰다. 아니, 멈..
2020. 4.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