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Impulse
자전거는 호석에게서 아직까지 돌아오지 않았다.
그깟 낡은 자전거 따위 아무래도 좋았다.
아니, 아주아주 오래도록 고쳐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 자전거는 선녀의 날개옷이다.
매일 호석을 찾아갈 수 있는 훌륭한 볼모이자 구실이기에.
정국이 매일 정오 순찰을 돌은 뒤 꼬박꼬박 찾아가는 그 정비소는 칭찬으로도 세련되었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갖출 것은 다 갖춘 소박한 곳이었다.
두 칸인 자동차 정비 가라지 중 한 곳을 완전히 자전거 수리소로 자리를 낸 것을 보아, 그닥 자동차 손님이 붐비는 곳은 아닌듯 했다. 대신, 아이들이 많은 이 동네 특성 상 자전거 손님은 호황인 듯, 그 큰 가라지 한 켠이 수리를 필요로 하는 자전거들로 빼곡했다. 정국의 아픈 자전거 역시 다른 환자 자전거들과 함께 제 수리 차례를 얌전히 기다리고 있었다.
언뜻 낡은 타이어들과 녹슬은 부품들과 차가운 수리장비들 뿐으로 보이는 그 정비소는, 그러나 여타 정비소들이 가지지 못한 부드러운 정취를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차례를 기다리며 줄지어 서 있는 자전거들 너머의 무뚝뚝한 회색 벽을 수놓은 한 점의 유화에서, 낡은 타이어들이 잔뜩 쌓인 마당 한 켠에 우뚝 자리 잡은 살구 나무에서, 그리고 그 모든 풍경 안에 녹아있듯 존재하는 호석에게서 유래한다.
그래서, 정국은 그 정비소가 좋았다.
그냥 어떤가 궁금한 것 뿐이에요, 천천히 고쳐도 되요, 라는 말을 입에 달고서 정비소를 드나든지 일주일째 되던 날,
"경찰 아저씨, 말로는 자전거 그냥 천천히 고쳐도 된다면서 이렇게 맨날 오면 오히려 재촉하는거 같단거 알아?"
호석이 그렇게 말했다.
그 장난스러운 웃음 뒤에 언뜻 언뜻 보이는 곤란한 듯한 기색에서, 다짜고짜 정비소를 처음 찾아갔었을 때 호석이 내비쳤던 어색함과 불편함을 떠올렸다.
'어, 아직 자전거 못 고쳤는데', 라며 겸연쩍어하는 호석의 표정 뒤에 미처 숨기지 못한 '뭐 하러 온거람', 이라는 달가워하지 않는 본심을 읽은 듯 하여, 그 날의 정국은 순간 발걸음을 돌려 도망칠 뻔 한 것을 억지로 꾹 눌러 참았었다. 다른 사람들로부터는 거절 당하거나 상처 받는 것에는 익숙할지 모르나, 어째서인지 호석에게만큼은 거절당하고 싶지 않은 여린 마음이 스스로에게 존재했다.
상처 받고 싶지 않았다.
미움 받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그보다 훨씬 더, 금세 잊혀질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고 싶지 않았다. 호석의 안에서 자신이 어떤 의미로든 특별한 존재가 되길 바랐다.
넉살 좋은 척, 일하는 옆에 같이 쪼그려 앉아 별 것 없는 이야기를 주절거리며 한참을 떠들어 대던 정국의 속은 사실 그런 마음으로 잔뜩 긴장을 하고 한껏 움추러들어 있었던 것을, 호석은 알았을까.
그렇게 아닌 척 표정을 살피며 눈치를 보는 자신을, 그 날의 호석은 그냥 내버려 두었다. 그리고 그렇게 저를 그냥 내버려 둔다는 것을, 정국은 포용의 의미로 이해하기로 마음 먹었다. 저 좋을대로인 해석일 수 있으나, 이도 아니고 저도 아니라면 기왕이면 다홍치마, 긍정적인 쪽으로 생각하는 편이 저에게 좋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 번 상황을 극복하게 되면, 두 번부터는 어려울 것이 없게 된다. 정국은 호석의 은근한 거절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안색을 살펴 불편해 하거나 어색한 기색을 읽어내더라도 그것을 내색하거나 그것에 휘둘리지 않게 되었다. 표정으로는 떨떠름해도 결국 제가 하는 대로 내버려 둘 테니까.
정국이 학습한 호석은 그런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오늘도, 정국은 호석이 보인 애매한 신호를 무시하고 제가 하고 싶은 것, 제가 하고 싶은 말을 호석에게 털어낸다.
"...나 아저씨 아니에요. 내가 세 살 더 어려요."
정국의 말에 일순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던 호석이 이내 자신이 줄곧 사용한 '경찰 아저씨' 라는 표현을 의미하는 줄 겨우 깨달았는지 박수를 치며 아하하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공기를 가르는 듯 쨍한 웃음소리. 벙긋 웃는 입모양이 꼭 하트 모양 같았다. 그 웃음이 전염되듯, 제 입가에도 미소가 걸쳐진다.
"아니 내 나이는 어떻게 또 기억했대. 경찰 아저씨라고 그래서 기분 나빴어요? 근데 경찰 아저씨는 경찰 아저씨잖아. 군인 아저씨, 소방관 아저씨, 경찰 아저씨. 그건 나이를 말하는게 아니라 그냥 직업이랑 같이 따라붙는거 아닌가? 아니야?"
"그건 아니죠. 그럼 나도 막 내 맘대로 불러도 되요?"
"불러봐, 불러봐. 정비소 아저씨? 자전거 아저씨? 뭔데? 뭐라고 부르게?"
무슨 말을 하려나 기대된다는 듯 장난기 서린 얼굴로 도발을 해 오는 호석을 향해 평소 집에서 남몰래 혼자 연습하던 호칭에 두근거림을 담아 나지막히 불렀다.
"형. 호석이 형."
개구지게 웃던 웃음이 불식간에 사라졌다. 반짝이던 두 눈에는 혼란스러움이 떠올랐다. 곧게 뻗은 눈썹이 살짝 아래로 쳐져내렸다. 그것을 정면에서 목도하고 있던 정국의 마음이 덜컥, 바닥으로 떨어져내렸다.
"……."
"……."
시선은 도망치듯 다른 곳으로 향했고 입 끝은 기분 따라 쳐지려는 것을 의식적으로 막으려는 듯 힘을 주어 당겨 올리고 있었다. 동그랗고 부드러워 보이던 볼이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그 굳어버린 얼굴에 저도 모르게 말아쥔 손아귀 속으로 주욱, 식은땀이 베인다.
"아…. 그,"
"…응, 맞네. 세 살 많으니까 형 맞지."
이유를 물어야 할까, 사과를 해야할까. 주저하며 고르던 정국의 말을 잘라내듯 억지로 쥐어짠 답변이 호석에게서 돌아왔다. 그리고 순식간에 어색해져 버린 공기를 마치 없었던 것처럼 치부하려는 양, 쉬고 있던 손이 부산스럽게 엄한 허공을 헤멘다.
'형이라고 부를거면 말 편하게 해' 라며 아무렇지 않은 척 이야기하지만, 그 방황하던 시선이 그 날 다시 정국에게로 돌아오는 일은 없었다.
그 하나의 표정과 반응에 덜컥 추락해버린 마음은, 혹여나 이제는 영영 저에게 햇살처럼 밝게 웃어주는 일은 없을까, 당장 내일 찾아가면 다시는 오지 말라는 것은 아닐까, 밤이 새도록 바닥을 기며 빙글빙글 해결도 되지 않는 고민을 수도 없이 토해내었다.
그리고, 다음날 에라 모르겠다 매라도 먼저 맞고 뒷일은 나중에 생각하자는 마음에 다시 정비소를 찾았을 땐 허무하게도, 호석은 저가 언제 그랬냐는 양 아무렇지도 않게 정국을 대하고, 또 그렇게 물 흐르듯 그냥 내버려 두었다. 그 표정의 의미가 무엇인지, 왜 그러는지 설명조차 해주지 않은 채로.
무언가 폐부를 서늘하게 찌르는 듯, 갑갑하게 속이 체이는 듯, 묵직하게 가슴을 누르는 것이 있었으나 정국은 그것을 어거지로 무시하기로 마음 먹었다. 괜히 어설프게 뒤쑤셔서 호석에게 미움을 사느니, 그냥 모른 척 덮어두고 아무렇지 않게 지내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았다.
...호석에게 좋은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정국 스스로에게는 좋았기 때문이다.
그렇게나 필사적이었다.
이유도 모른채.
반복된 패턴은 사람을 둔화시키기 마련이다. 정국의 낯설고 느닷없는 방문이 거의 매일, 규칙적으로, 타의 없이 반복된다는 것을 학습하게 된 호석의 경계심은 점차 누그러진 듯, 무덤덤하고 당연하게 정국을 반기게 되었다. 이제는 형이라는 부름에 익숙해져 별다른 감흥을 보이지 않게 되었고, 정국도 그것이 오히려 자연스럽게 입에 베이게 되었다.
다만, 아직까지 한 번도 그가 자신의 이름을 불러준 적이 없다는 씁쓸한 면이 있긴 했지만, 그것은 별 상관이 아니었다. 느리게나마 조금씩 호석이 자신을 인식해 가는 것이 정국에게는 더욱 중요하고 즐거운 과정이었기에.
담장에 노랗게 커튼을 드리우던 개나리들이 조금씩 땅으로 흩어지고, 그 대신 연두빛의 귀여운 이파리들이 서서히 꽃이 있던 자리를 수놓는 시기가 다가오고 있었다. 정비소 마당의 살구 나무는 그러한 봄의 돌림 노래를 이어받으려는 듯, 가지에 아기 손톱 같은 봉오리들을 맺어간다. 몽글 몽글, 저 핑크빛 진주알 같은 봉오리들이 톡하고 벌어져 나무 한가득 펼쳐진 풍경을 상상하며 정국은 저도 모르게 미소를 베어물었다.
그 설레이는 나무 그림자 아래에서 호석은 정비소 입구로부터 등을 보인 채로 쭈그리고 앉아 무언가에 몰두하고 있었다. 슬그머니 뒤에 서서 어깨 너머로 그 하는 양을 보니 녹이 잔뜩 슬어있는 자동차 부품을 기름으로 박박 닦고 있다. 그 단순한 작업에 뭘 그리 집중했는지 사람이 접근하는 줄도 모르는 것 같아, 정국은 콜록 콜록, 작게 일부러 기침을 하고 흠흠, 목을 가다듬었다.
그 기침 소리가 무에 그리 놀랄 일일까. 호석이 앉은 자리에서 신기할 정도로 펄쩍 뛰어오르며 소리가 난 방향을 두리번댔다. 그리고 이내 정국이 제 뒤에 서 있는 것을 발견하자 정말로 놀랐다는 듯 곱게 눈을 흘기며 연신 가슴을 쓸어내린다.
행동 거지 하나 하나가 귀여운 사람이다.
정국은 신이 나서 허리를 접으며 까르륵대고 웃음을 터뜨렸다.
"너 맨날 오니까 경찰이 뻔질나게 무슨 일이냐고 사장님이 안좋아하잖아."
"죄 지은게 없으면 안 좋아할 이유가 뭔데요. 내가 사장님 보러 오나, 형 보러 오지."
"아니, 날… 왜…"
그 말에 제대로 반박은 못하고 삐죽 내민 입술로 꿍얼거리며 장갑 낀 손으로 봉긋한 볼을 긁적거린다. 저러니까 맨날 볼따구에 검댕이를 묻히고 다니는구나. 그렇게 또 하나 새로운 사실을 수집해 마음 속에 곱게 갈무리하며, 웃음이 나오려는 것을 숨기고자 고개를 들어 살구나무를 올려다본다.
그 살구나무 밑에 앉아있는,
귀여운 사람.
봄 같은 사람.
꽃 같은 사람.
호석이 작업하는 옆으로 쌓여있는 낡은 타이어 위에 엉덩이를 걸쳤다. 슬슬 꽃샘 추위도 물러가고 사람을 멍하게 만드는 나른하고 따뜻한 늦은 오후 햇빛에 몸을 맡기니 피부가 따끔따끔, 온 몸은 노곤노곤. 이대로 아지랑이가 되어 사라져 버릴 것 같았다. 어쩐지 마냥 좋은 기분에 저도 모르게 흥얼흥얼 노래를 불렀다.
"......노래 진짜 잘하는거 같아."
"누구요? 저요?"
"응. 왜 예전에... 그 때도 노래 예쁘게 잘하던데."
그 때.
정국이 호석을 집으로 데려다 준 날이다.
마치 마법이 뿌려졌던 것 같다고 정국이 기억하는 날이다.
그 때는 노래가 예쁘다고 했는데, 지금은 노래를 잘 한다며 나지막히 정국을 칭찬한다. 정국은 밀려 올라오는 뿌듯함과 쑥스러움을 감추려 앉은 몸을 비틀어 숙이고 두 손으로 입가를 가렸다. 제복 셔츠 밖으로 드러난 뒷목에 부드럽게 와닿는 봄바람이 간질간질 했다.
"더 불러봐."
"뭐 불러 줄까요?"
"그 때 그거. 아까도 불렀던거. 그..... 흐흠흠~...와의 지난~날~ ...그러던거."
귀동냥으로 들어 영 알지 못하는 노래지만 꽤나 마음에 들었던 듯, 손으로 음의 높낮이까지 설명해가며 어설프게 더듬더듬 부르는 모습이 웃기면서도 마냥 천진난만하여 정국은 푸핫 크게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제가 생각해도 그 어설픈 노래가 웃기긴 웃겼던지, 호석 역시 무릎을 손바닥으로 두들기며 깔깔대고 웃는다. 서로간의 웃음이 마치 공명을 하듯 증폭되고 멀리 멀리 하늘 끝까지 올라가 바람이 되고 구름이 되고 봄볕이 된다.
기분이 좋았다.
행복했다.
옥탑방 마당에 놓인 평상에 낡은 기타와 빨간색 카세트 테이프를 들고 나와 자리를 잡고 앉았다. 늦은 저녁의 따뜻한 봄바람을 등으로 맞으며 기타를 잡아 손가락으로 몇 번 튕겨보고 코드를 맞춘다. 빨간 카세트의 플레이 버튼과 녹음 버튼을 동시에 누르자 그 안의 테이프 심이 뱅글뱅글 돌아가는 것이 보인다.
"아,아, 마이크 테스트."
정지 버튼을 누르고 거꾸로 돌려 제 목소리가 제대로 녹음이 되었는지 확인한다. 스피커에서 나오는 제 목소리가 영 어색하고 이상해 괜히 기타줄만 한 번 더 튕겨 보았다. 민망하다. 그래도 꼭 하고 싶었다.
다시 한 번 플레이 버튼과 녹음 버튼을 동시에 누르고, 5초 정도 기다렸다가, 코드를 잡고 기타를 치며 노래를 한 소절 부르다가. 실수로 목소리가 삐끗해서 에이씨, 얼른 녹음버튼을 끄고 테이프를 다시 앞으로 돌리고. 다시 녹음. 녹음된 것 확인. 마음에 안들어서 다시 녹음. 확인. 녹음...
가장 마음에 들게 부를 때까지 계속.
그리고 이렇게 앞으로 아홉곡을 더 불러서 테이프 하나를 앞 뒤로 꽉 채운 뒤, 호석에게 자랑스럽게 선물이라고 내밀 것이다. 뿌듯하니 칭찬해 달라는 얼굴을 하고, 정말 좋아하는 노래들이라서 형이 들어줬으면 좋겠어요, 라고 말하며 그렇게.
이 봄날 밤의 정취와 마음을 담아서 그렇게.
그렇게.
-2019.06.18
재연재를 시작하면서 소소하게 변경을 하게 된 편입니다.
이 편은 처음 쓸 당시에도 고생을 꽤나 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결국 이렇게 꽤나 손을 덧대게 되었네요. 그럼에도 여전히 부족하고 산만한 구석이 있는 듯 하여 참으로 아쉽습니다.
그것과는 별개로 개인적 바람이 있다면... 정국이가 유재하님의 노래를 조금이라도 불러주었으면 한다는 것 ㅜㅜㅜ 기왕이면 '그대 내품에'... 그럼 제가 망상이 폭발할텐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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