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홉6 [홉른/민홉/국홉] Le Prince et Ses Fleur #05 by Impulse 정국은 여행을 떠날 준비를 마쳤습니다. 정국은 그의 꽃이 없었던 때로 돌아간 것 처럼 조용해져버린 이 별을 떠나야만 했습니다.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정국은 자신의 꽃에게 작별 인사를 나누고 싶었습니다. "...나는 떠날거야." 뒤돌아 앉은 채 고개를 숙인 꽃은 오늘도 말이 없었습니다. 그런 그의 침묵이 정국의 마음을 따끔따끔하게 찌르는 것 같았죠. 그래서 그를 위해 준비한 귀마개를 그의 목에 가만히 걸어주었습니다. "이제 화산이 터져도 놀라지 말아. ...갈게." 떠난다는 인사를 마쳤음에도 어째서인지 정국의 발은 마치 바오밥 나무의 뿌리라도 된 것 처럼 그 자리에서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이제 이 별을 박차고 뛰어오르기만 하면 되었는데도 말이죠. 무엇이 그의 발을 그렇게 만들어 버린.. 2020. 12. 22. [막라홉/슈홉] i, my, me, mine, MYSELF #5 by Impulse 호석은 여자들을 대하는 것이 훨씬 편하다고 했다. 왜냐하면 호석 주변의 여성들은 적당함의 선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녀들은 그에게 적당히 친절했고 적당히 집착했으며 적당히 거절 당하는 것을 두려워했다고 한다. 조금 이해하기 어려운 문장이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당사자의 체험을 바탕으로 한 비교 표현이므로, 호석의 주변 인물들에 대한 행간을 제대로 파악하려면 이 문장을 반대로 이해하는 것이 옳다. 호석 주변의 '남성'들은 호석에게 '과하게' 친절했고 '과하게' 집착했으며 '과하게' 거절 당하는 것을 두려워했다. 호석이 철이 들 무렵부터 이미 꽤 높은 비율로 상기와 같은 부류의 남성들이 그의 주변을 배회하고 있었기에 호석은 조금 일반인들과는 다른 남성성과 여성성에 대한 스테레오 타입을.. 2020. 4. 27. [막라홉] i, my, me, MINE, #4 by Impulse 이 학교의 캠퍼스에는 단풍나무가 많다. 학교의 상징색이라 붉은 단풍나무를 일부러 많이 심은 것인지, 아니면 학교를 설립할 당시부터 단풍나무가 많아 학교의 상징색을 붉은색으로 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여름에는 키 크고 울창히 푸르른 나무였다가 가을이 오면 붉게 흐드러져 온 캠퍼스에 불이 난 듯 보이게 만드는 그 단풍나무들은 학교의 명물이자 자랑이었다. 학생용 주차장으로부터 한참을 걸어야 나오는 공대 건물까지 연결된 어둑한 외곽도로을 따라 붉은 커튼을 널어놓은 듯 끝없이 이어지는 단풍나무는 낮에야 낭만적이지만 밤에는 어쩐지 서늘한 기분이 들게 하는 구석이 있었다. 검은 하늘과 바람에 흔들리는 붉은 단풍은 마치 마왕의 입처럼 늦은 시각 그 밑을 지나다니는 이들을 집어 삼킬 듯 넘실거렸다.. 2020. 4. 27. [막라홉] i, my, ME, mine, #3 by Impulse 7월 4일, 미국의 독립기념일이다. 대형 마트에는 한 달 전부터 성조기를 본딴 아이템들과 기념일 당일에 터뜨릴 폭죽들을 쌓아두고 판매하기 시작했다. 평소에는 식료품 코너에서 살 것만 사고 거들떠도 보지 않던 그 잡화 코너 앞에서 태형은 빨갛고 파란 박스에 들어있는 스파클라 폭죽 꾸러미를 괜시리 만지작 거렸다. 가격이 비싼 것도 아니고 사는데에 제한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태형이 그것들을 선뜻 사기 주저하는 이유는, 그것을 함께 터뜨리며 웃어 줄 사람이 지금 이곳에 없기 때문에. 학교 내부의 전시관에서 인턴 활동을 하게 된 태형과는 달리 호석은 연구실의 단기 직원으로 뽑혀 6월 초순경에는 이미 한시간 반은 차로 달려야 나오는 다른 도시로 떠나고 없었다. 8월 중순 즈음에나 학교로 돌아온다.. 2020. 4. 27. [막라홉] i, MY, me, mine, #2 by Impulse 폭설이 내렸다. 하늘에 구멍이 뚫린 듯 하얀 것들이 사흘 내내 내려 지붕을 덮고 나무를 덮고 길을 덮었다. 눈의 무게를 지탱하지 못한 썩은 나무는 쓰러져 길을 막았고, 길을 뚫기 위해 윙윙 시끄럽던 제설차는 둘째날 이후 집 앞을 다니지 않게 되었다. 8명의 하우스메이트들 중 본가가 있는 6명은 진작에 눈폭풍이 오는 지역으로부터 탈출을 했고, 의지할 곳이라곤 없는 유학생 신분인 지민과 호석만이 덩그러니 넓다란 집에 남아 전기가 끊기고 핸드폰이 불통이 되며 교통이 마비되는 순간을 맞이해야 했다. 흔히들 상상하는 아포칼립스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무인도에 둘만 남으면 어떻게 하려냐는 망상은 허황된 것이 아니다. 가스는 있음에도 전기가 끊겨 돌아가지 않는 보일러 탓에 냉골이 된 방에서 오.. 2020. 4. 27. [막라홉] I, my, me, mine, #1 by Impulse 술이 알딸딸하게 오른 윤기가 삿대질을 하며 외쳤다. "야 이, 두꺼비 같은 셰에끼들아!" 호석은 양손으로 제 얼굴을 숨겼다. 평생 돈 걱정 없이 살 금수저들이 아니고서야, 유학생들의 가장 큰 지출이자 난제는 학비와 주거비이다. 학비가 없으면 제 나라로 돌아가야 하므로 열외로 치자면, 역시 가장 고민이 되는 지출은 주거비가 된다. 호석은 이 미국 대도시의 스튜디오 혹은 원베드룸에서 몇 년이고 생돈 다 내며 여유있게 혼자 살 만한 경제적 백그라운드를 지닌 금수저 출신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남의 집에 눈치 보면서 낑겨 사는 생활에 싫증 내지 않을 만큼 주거생활에 무감각한 사람 또한 되지 못했다. 스튜디오에 혼자 살 수 있는 돈으로 자기가 선택할 수도 없는 룸메이트의 눈치를 보면서 낑겨 사는.. 2020. 4. 27.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