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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침과, 가난과, 사랑은, [완결]

[국홉] 기침과, 가난과, 사랑은, #19

by 1mpulse 2020. 8. 2.

by Impulse

 

 

 

 

 

 

 

"...야."
"...예에."
"야, 이 씨벌놈아."
"...예에..."
"이 꼴 보이냐? 보이냐고오."
"죄송함다."

 

정국은 병실 침대 옆에 붙어 앉아 시뻘건 얼굴로 씩씩대는 김경장의 화풀이를 고스란히 받아내고 있었다. 

 

화가 날 만도 하다. 지붕에서 떨어지기는 같이 떨어졌는데 한 사람은 왼쪽 쇄골서부터 팔, 그리고 갈비뼈까지 복합골절을, 다른 한 사람은 무슨 일이라도 있었냐는 양 멀쩡하니 말이다. 게다가 그렇게 된 연유는, 김경장이 정국의 인간 쿠션 역할을 아주 제대로 했기 때문에. 

 

"니 떨어지면서 일부러 내 위로 떨어졌지? 너 나랑 떨어지면서 눈도 마주쳤잖아. 내 멱살도 잡고, 어? 이 새끼야, 어? 어?"
".......아잉데여?"
"아니긴, 뭐가 아ㄴ...!!!! 으흐억, 옆구리...!"

 

베고 있던 베개를 집어 휘두르려다 부러진 갈빗대를 붙잡고 데굴거리는 김경장을 안타까운 눈으로 내려다보며 정국은 속으로 식은땀을 흘렸다. 떨어지는 와중에 제 몸으로 올 충격을 반감시키기 위해 고의로 김경장의 몸 위에 바싹 붙어 떨어졌는데, 그걸 귀신같이 느끼고 정국을 추궁해 오는 것이다. 농땡이만 피우는 것만이 재주인 줄 알았는데, 자기에게 화가 오는 것은 민감하게 알아차리는 것이 예사 감각이 아니라며 정국은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아니 근데, 제가 안다쳤으니까 그나마 빨리 구급차도 부른거고요... 그리고 선배는 몸이 이러니까 한동안 땡볕에서 물비린내 맡으면서 근무 안 해도 되잖아요. 제가 선배 몫까지 일 할 테니까 그냥 병원에서 쉬는 거라 생각하시고..."
"야 이 새끼야, 그러려면 적당히 다쳤어야지, 몸이 지금 이게... 아 꼴도 보기 싫어, 썩 꺼져버려."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말투는 꽤나 누그러진 것이, 몸이 여기저기 다쳐서 불편하고 아픈 것보다 꿉꿉한 더위 속에서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바쁘게 근무하는 것이 어지간히도 싫었던 모양새다. 저도 배워먹은 게 있어서 농땡이질을 치지만, 역시 원조에게는 당해낼 재간이 없다고 정국은 병실을 빠져나오며 생각했다. 애초에 호석이 아니었더라면 저야 농땡이를 칠 이유도 없고 말이다.

 

 

 

 

어느새 밤이 깊은 시각이다. 

 

낙상사고가 일어나고부터 김경장의 치료를 다 마치기까지, 제 몸도 정밀검사 받으랴 파출소장에게 보고하랴 김경장에게 욕처먹으랴 경황이 없었던지라 시간이 이렇게나 지난 줄을 병원에서 나오고 나서야 깨달았다. 호석에게는 저녁에 돌아오겠다는 말만 남기고 집을 나왔는데, 저녁은 커녕 연락도 하나 없이 깜깜한 밤이 되어버린 것이 미안함과 동시에 걱정이 되어 정국은 서둘러 근처의 공중전화 부스 안으로 들어섰다.

 

희뿌연 조명 아래 수화기를 들고, 둔탁한 은빛 전화기에 백 원짜리 동전을 밀어 넣고 제집 전화번호를 누른다.

 

뚜르르르... 뚜르르르...

 

받는 이의 대답 없이 반복해서 들려오는 신호음에 긴장감이 돌았다. 한참을 붙잡고 있어도 답이 없는 것이 초조해지기 시작한다. 화장실에라도 간 걸까. 이 시각에 벌써 잠이 들었나. 아니면 제집이 아니라서 일부러 전화를 안 받나. 

 

정국은 다시금 다이얼을 누른다.

 

뚜르르르... 뚜르르르...

 

귀찮을 정도로 울려대면 무슨 일인가 싶어서라도 받지 않을까. 제가 늦게까지 들어오지 않는데 이렇게나 전화가 끊임없이 걸려오면 저라고 생각해서라도 받지 않을까. 그냥 제발 좀 받아주라. 그러나 수화기 너머로는 여전히 다이얼 소리만이 차갑게 반복된다. 

 

그래도 혹시, 라는 마음에 또 다시 다이얼을 누른다.

 

뚜르르르... 뚜르르르...

 

지난밤 잠에 빠져들기 직전, 호석이 하려던 말을 떠올렸다. '그러니까'. 그 뒤로 이어진 말은 무엇이었을까. 저의 두려움대로 두 사람의 끝을 고하는 말이었을까. 목덜미가 서늘하게 식어버리는 기분이 들었다. 대답이 없는 다이얼 소리에 입술이 바싹 마른다. 저의 다녀오겠다는 말에, 기다리겠다는 대답이 없었던 것이 떠올랐다. 불안한 마음이 사정없이 요동을 친다.

 

수화기를 내려놓고 전화기 부스에서 빠져나오면 어느새 다시금 굵어진 빗줄기가 정국의 우비 위로 내려꽂힌다. 이 지긋지긋한 비는 도저히 그치는 법을 모르는 것일까. 재게 놀리는 발걸음 끝으로 채이는 물방울들이 걸그적거렸다.

 

 

 

 

 

 

 

 

 

올려다보이는 불꺼진 옥탑방이 캄캄한 어둠 속에 까맣게 묻혀 보여도, 호석이 이미 잠이 들어 그런 것일 거라는 한 가닥 희망을 좀처럼 놓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 잠겨있지도 않은 문을 열고 들어가, 눅눅히 가라앉은 어둠을 헤쳐 불을 켜고, 그곳에서 저를 기다리다 지쳐 잠이 들어있어야 할 사람이 사라지고 없는 것을 발견했을 때. 정국은 상실감에 다리가 풀려 그 자리에 쭈그려 앉을 수 밖에 없었다.

 

막막함에 마른세수를 하고 크게 한숨을 내뱉는다. 어디로 갔을까. 하다못해 작은 쪽지 한 장이라도 남겨두고 사라졌을까 싶어 텅 빈 방 안을 둘러보다가도, 혹여 그것이 이별을 고하는 짧은 문장일까 더럭 겁이나 고개를 모로 돌렸다. 

 

이렇게 끝이 나선 안되었다. 

 

그에게 하고 싶은 말이 아주 많았다.
주고 싶은 마음이 아주 많았다.
함께 하고 싶은 일들이 아주 많았다.

 

지금이라도 쫓아간다면 잡을 수 있을까. 

 

당장 어디로든 뛰쳐나가 그를 잡지 않으면 안될 기분에, 정국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골목길을 따라 뜀박질해 내려간다. 

 

아래로 
아래로
아래로

 

빗속을 뚫고
사라져버린 호석을 찾아 뛰어간다.

 

 

 

 

 

 

 

 

 

 

마치 아는 것이 그것 밖에 없는 사람처럼 어둠에 싸인 정비소로 무작정 달려내려가 그 단단한 철문을 거칠게 잡아당겨 보지만, 굳게 자물쇠가 채워진 채 닫혀있는 그것은 움쩍달싹조차 하지 않았다. 철컹철컹, 어둠을 울리는 그 거칠고 무거운 쇳소리가 이때껏 호석과 함께 했던 시간들을 모조리 빼앗기고 봉인당한 듯 들려 마음이 매캐해진다. 호석으로부터 그 많은 이야기들을 듣고, 그 많은 시간들을 함께 공유하였음에도, 정국은 그가 사라진다면 어디로 가게 될 것인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발걸음을 돌려 호석이 지내던 반지하 방을 찾아가 보았지만, 지난 홍수 때 침수가 되어버린 그 방은 더 이상 사람이 지낼 곳이 못 되게 되어버렸다. 버려진 듯 활짝 열린 그 알루미늄 문 너머로 들여다본 방 안은, 습기와 더위로 인해 피어오른 곰팡이로 까맣게 뒤덮여 있었다. 마치 활활 타버리고 남은 재처럼, 그렇게.

 

호석과 처음 만났던 그 주황빛 가로등 불빛 아래에도, 이제는 푸르른 잎사귀만 남은 개나리 덤불 담벼락 아래에도, 함께 수다를 떨며 시간을 보냈던 파출소 앞에도. 두 사람이 함께 했던 그 모든 곳들에서 흔적을 더듬듯 돌아다녀 보지만, 그곳에는 그 누구도 없었다. 마치 아련한 추억만을 정국의 머리 속에 남겨둔 채, 세상이 통째로 변해버린 듯. 

 

새카만 어둠 속에서, 정국은 더 이상 어디로 가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멈춰 섰다. 마지막 인사도 없이 사라져버린 호석이 원망스러웠다. 자기 할 말만 하고는 정작 저가 하고 싶은 말은 들어주지도 않고 떠나버린 호석이 미웠다. 하필이면 이렇게 비가 많이 오는 궂은 날 저를 피해 떠나버린 호석이 가슴 시렸다. 

 

그 사람을 담은 사랑은 과연 제 영혼의 방향을 담은 지도였을까. 순식간에 가야 할 길을 잃고 이 어둠 속에 홀로 내팽개쳐진 막막하고도 절망적인 기분에, 정국은 선 자리에서 아이처럼 펑펑 눈물을 쏟았다. 그렇게나 원망스럽고, 밉고, 가슴 시렸다. 

 

억장이 무너지듯.

 

 

 

 

 

 

 

 

그렇게나 사랑을 했다.

 

 

 

 

 

 

 

 

 

 

 

 

 

 

 

 

제집으로 향하는 오르막길 밑에서 정국은 암담한 기분으로 그 위를 올려다본다. 어두운 하늘을 향한 그 길이 말도 안 되도록 먼 것처럼 느껴져 한숨부터 나왔다. 집으로 돌아가면, 제가 미처 찾지 못했던 호석으로부터의 쪽지나 편지가 있을까. 그렇다면 그것을 어떤 마음으로 읽어야 하나. 아니, 그 편지라는 것이 있기는 할까. 

 

또 다시 튀어나오려는 설움을 꾹꾹 눌러 삼키듯, 한 걸음 한 걸음 오르막길로 무거운 발걸음을 옮긴다. 

 

홀로 오르는 그 길이 괴로워, 여전히 아무도 없을 그 옥탑방이 무서워, 일부러 골목길을 빙빙 돌아 집으로 향했다. 호석과의 추억이 자꾸만 제 발목을 그러잡고 이리저리 휘청이게 만드는 듯, 갈피를 잡지 못하고 비틀비틀 옮기는 걸음걸이가 위태롭기만 하다. 그렇게 한참을 방황하듯 골목길을 굽이굽이 돌아,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일직선의 오르막길 아래 섰을 때.

 

 

 

 

그 오르막 끝,
까만 하늘 아래 보이는 저의 옥탑방.

 

그 앞 가로등 아래 우산을 쓴 채
쭈그려 앉은 한 사람의 그림자.

 

 

 

 

정국은 제 눈에 힘을 주어 깜박였다. 

 

이 시각, 이 날씨에 길을 잃은 사람인 걸까. 아니면 술에 취한 사람인 걸까. 그도 아니면,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인 걸까. 그것도 제집 앞에서. 더욱 선명히 확인하고 싶어 주먹으로 눈을 비비고 몇 발짝 더 오르막길을 밟고 오르면, 두 눈에 들어오는 것은 마치 개나리꽃처럼 화사한 노란색 우산을 쓴. 

 

눈에 익은 고운 그 모습. 

 

그 사람도 정국을 보았을까.
쭈그렸던 몸을 비틀거리며 일으켜 세우는 그의 모습은 마치, 바람에 한껏 꺽여 위태로운 꽃대처럼, 빗줄기에 자신의 있을 곳을 잃은 힘겨운 나비처럼, 그리고, 마치 비행기가 지나던 옆을 날다가 기류에 휘말려 스스로의 항로를 잃고만 한 마리 새처럼. 그렇게, 그가 흔들린다.

 

누구인지를 확인하기보다도 먼저, 그 이름을 부르기보다도 먼저, 정국의 다리가 제멋대로 움직이며 오르막을 내달리기 시작한다. 하고 싶은 말이, 주고 싶은 마음이, 함께 하고 싶은 일들이, 아주아주 많다는 것을 전하고 싶어서. 저가 머뭇거리는 사이에 또 다시 도망을 갈까 봐. 두 번 다시 놓치고 싶지 않아서. 온 힘을 다해 땅을 구르고, 필사적으로 비에 젖은 아스팔트를 박차고, 있는 힘껏,

 

 

 

 

 

 

 

위로,
위로!!
위로...!!!

 

 

 

 

 

 

 

"호석이형!!!!!"

 

 

 

 

 

 

 

비명처럼 내질러진 그 외침은 마치 화살처럼 날아가 당신의 심장을 관통하기라도 한 것인지. 멍청하게 서 있던 그 사람의 손에 들려있던 우산이 힘 없이 옆으로 굴러떨어진다. 그리고 이내, 그가 내리막을 따라 달려오기 시작한다. 절뚝절뚝, 쭈그려 앉았던 다리가 힘겨워 위태롭게. 비틀비틀, 비에 젖어 미끄러운 땅에 넘어지지 않도록 온 발에 힘을 싣고. 그렇게 온 마음을 다해. 

 

 

 

 

 

 

저에게로, 나린다.

 

 

 

 

 

 

정국은 두 팔을 크게 벌렸다. 

 

이곳으로
이 품 안으로
이 마음 속으로
당신과 내가 더 이상 길을 잃지 않도록.

 

두 팔을 크게 벌리고,
오르막길을 박차오르며,
숨을 크게 들이킨 다음 순간,

 

아아,

 

왈칵, 비에 젖은 무게가 저에게 쏠리고.
가슴과 가슴이 부딪히듯 맞닿고.
당신의 곧게 뻗은 팔이 저의 목을 둘러오면
그 얇고 가는 등을 두 팔로 단단히 붙들어
제게로 틈 없이 힘껏 끌어안는 그 순간.

 

그 순간.

 

비에 젖은 두 몸이 하나가 되며 튀어 오른 물방울의 파편들이 마치 하얀 안개꽃처럼 어둠 속에서 흐드러지게 피어오르고.

 

가로등 불빛을 반사하며 내리는 빗방울들이 마치 분홍빛 진주알처럼 반짝거리며.

 

검은 어둠 속에서 선명한 무지개로 피어나는.

 

당신을 온 마음으로 품는
영원의 바로 그 순간.

 

 

 

 

 

 

 

 

 

 

 

 

 

 

 

 

 

제 품 안의 사람을 놓칠세라 꽉 붙들고 있으면서도, 정국은 제 손안의 감각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제게서 완전히 떠나버렸다고 생각한 사람이 집 앞에서 저를 기다리고 있던 것도, 그렇게도 제게서 일정한 거리를 두고 싶어 하던 사람이 한달음에 제게로 달려온 것도, 제 품 안으로 뛰어든 것도. 이것이 과연 현실이 맞기는 한 것인지.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 정국은 부둥켜안았던 팔을 풀고 그 품 안의 사람을 조심조심 제게서 풀어놓는다.

 

비가 쏟아지는 주홍빛 가로등 아래로 비치는 그 얼굴은, 한껏 울 것 같은 표정을 하고 제 얼굴을 관찰하듯 바라보고 있었다. 그 표정 탓에 설움 담긴 울음이 속에서부터 또 다시 솟구쳐 오른다. 알 수 없다. 자신은 어째서나 이렇게 그의 웃음에, 그의 눈물에 금세 동조되고 물들어버리고 마는지.

 

"형...! 나만! 내가...! 내가!! ......내가!!!"

 

저는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걸까.
나만 두고 어디를 갔었느냐, 내가 같이 행복하게 살자고 말까지 했는데. 내가 얼마나 당신을 좋아하는지 아느냐. 내가 이렇게나 당신을 사랑하는지, 야속한 당신은 아느냐. 그 모든 말들이 머리 속에서 엉망진창 뒤섞이고, 헐떡이듯 크게 벌린 입에서는 단편적인 소리만 띄엄띄엄 튀어나오다가, 결국 다 내뱉지도 못한 채 입을 꾹 닫고 인상을 찌푸리면 이제껏 묵혀둔 제 마음이 눈물이 되어 와르르 쏟아져 내린다 이래서 맨날 호석이 저를 보고 바보라 불렀는가 싶다. 그러나 바보라고 불러도 좋으니, 지금 눈앞에 있는 그 예쁜 입으로 저의 이름을 부르고, 제 바람에 그러마고 대답해주면 소원이 없겠다고 정국은 생각한다.

 

여전히 벙어리마냥 말이 없는 호석이 답답했다. 그러나 설움에 잔뜩 열이 오른 제 두 뺨 위로 얹어지는 그의 고운 두 손이 얼음장처럼 차갑게 식어있는 것에서, 정국은 그가 오래간 빗속에서 찬바람을 맞으며 있었음을 읽는다. 그리고 그가 왜 그래야만 했는지 알 수 없음에도, 그냥 속이 너무나도 상했다. 그냥 그게 그렇게나 서러웠다. 그래서 쿨쩍이는 코를 들먹이고, 또 다시 맺혀버린 눈물을 짜내느라 두 눈을 꾹 감았을 때.

 

제 입술에 닿는 차갑고도 부드러운 감촉.
제 뺨에 닿는 오똑한 코 끝.
눈을 뜨면 지근거리에서 보이는,
비와 눈물에 젖어 가늘게 떨리는 속눈썹.

 

알 수 없는 사람. 

 

그렇게 생각이 드는 것보다도 우선, 정국은 제 뺨을 붙잡은 차가운 두 손을 떼어내어 제 목 뒤로 두르고, 그 가느다란 허리를 단단히 붙들어 제 쪽으로 끌어당겨 안아, 제게 맞붙은 그 얇은 입술을 빗물과 함께 크게 베어 물었다. 얼핏 벌어진 틈새를 파고들어 그의 차가운 체온을 녹이고, 그의 호흡과 마음과 영혼을 모두 삼켜버릴 듯 한껏 숨을 들이키면, 제 목에 둘러진 두 팔에 힘이 들어가고 품 안의 비에 젖은 몸이 제게로 바싹 다가온다. 그 모든 것들이 견딜 수 없이 벅차올라서. 마음이 터져버릴 것 같아서. 정국은 품 안에 가둔 그 몸을 더욱 세게 그러안는다. 마치 영원히 떨어질 수 없는 한 몸이 되어버리고 싶은 것 처럼. 더욱 더 세게, 더욱 더 애틋하게, 그렇게.

 

 

 

 

 

 

 

그렇게, 빗속에서 축복을 받듯,

 

시나브로 둘은 하나로 맺힌다.

 

 

 

 

 

 

 

 


-2020.07.04.

다음편 20편으로 이 길었던 이야기가 마무리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