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비 [완결]3 [국홉] 여우비 (下) [완결] 그 이후로 몇 해 간 정국은 사춘기를 심하게 앓는 듯 보였다. 전에는 꼬박꼬박 하던 글공부도 그리고 신이 나서 하던 활쏘기, 검술도 죄다 뺀질나게 농땡이를 부리며 집에서 도망치듯 나가 어둑해져서야 돌아오곤 하였다. 그 와중에 할아버지 사랑방에는 꼬박꼬박 들러 안부 인사는 잘 드리면서도, 어딜 다녀왔느냐 왜 공부를 안하고 겉도느냐며 잔소리를 하는 호석의 말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아니, 눈조차 마주치려 들지 않았다. 이유를 물어도 묵묵부답, 입을 닫아 걸고는 이젠 하루에 목소리 한 번 듣는 것 조차 힘들어져 버렸다. 그리도 곰살맞던 아이가 그렇게 변해버리니 호석의 억장이 무너져 내리며 세상이 다 싫어지는 것 같은데, 그럴 때 마다 사춘기 때라 그런가보다 억지로 삼키듯 이해하곤 겨우 마음을 다잡았다. 그.. 2020. 4. 27. [국홉/랩홉] 여우비 (中) 혼인을 들어간지 얼마간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고 그 집안의 법도를 배우고 익히느라, 가만히 있어도 눈치가 보이고 괜히 주눅이 들어서 한참 움추러들어 있을 때, 그런 호석을 웃게 만들고 기운을 돋게 만들어 주는 것은 각시야 색시야 부르며 졸졸 쫓아다니는 꼬마신랑 정국이었다. 호석은 타고난 머리가 영리하여 일을 시키는 대로 곧잘 하기는 하면서도, 사람인지라 때론 실수를 하기도 하는 법이다. 그럴 때 집안 어르신께 한 소리 들을손 치면 어디서 듣고 튀어나오는지 정국이 온갖 해괴한 방법으로 호석이 혼이 나는 것을 막으려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였다. 예를 들면, 닭장에서 귀한 장닭을 잡아다가 담장 위로 올라가 봉황이 날아간다며 고모님 뒤통수에 대고 집어 던진다던가. 풀숲에서 젖먹이 새끼 염소를 납치해, 화가 단.. 2020. 4. 27. [국홉/랩홉] 여우비 (上) 상인이 돈으로 양인의 신분을 사고, 양인이 돈이 없어 신분을 파는 시대의 이야기이다. 양반이니 비가 와도 뛰지 말아라 먹을 때도 등을 꼿꼿이 하고 먹어라 하던 것도 곰팡내 나는 이야기다 뒷소리를 듣고, 비옥한 땅마지기와 엽전의 갯수가 권력이 된 지 오래인 이 때, 한 마을에 남준과 호석이 내울을 가운데로 두고 살고 있었다. 남준의 집안은 타국에서 들여온 진귀한 것들을 내다파는 큰 손으로 그 마을에 점차 세를 넓혀가고 있는 가문이고, 호석의 집안은 한 때 그 동네의 큰 어른을 여럿 모셨던, 좋게 말하면 청렴하고 참으로 선비다운 집안, 나쁘게 말하면 고리타분하고 시대를 읽지 못하는 저물어가는 태양이라 할 수 있겠다. 이렇듯 상반된 집안이 개울을 건너로 마주하고 있다보니 은근히 상호간에 신경전이 있었고, 신경.. 2020. 4. 27.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