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Impulse
매앰 맴맴맴맴 매앰--------
장마가 지나자 땅 속에서 솟아나온 매미들이 온 천지에서 시끄러웠다. 습한 공기는 중천에서 내리 꽂듯 쏟아지는 태양열에 의해 잔뜩 달구어져 마치 찜통 안에 들어있는 듯 숨이 턱턱 막히고, 누런 흙바닥은 지글지글 달아올라 아지랑이를 아른아른 피워올린다.
아직도 기억하는 숫자, 37.9도.
단전에서부터 짜증이 부글부글 끓어오르게 만드는 더위다. 가만히 있어도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그런 더위 속에서 호석은 전역을 했다.
부대원들과 인사를 나누고,
중대장에게 경례를 하고,
후임들에게 축하를 받으며.
하루 하루가 지옥 같았던 군대도, 결국은 사람 사는 곳이었다. 모친상을 당한 이후로 많은 도움을 받았던 이들의 배웅과 응원을 등에 업고, 이글거리는 태양을 머리에 얹고, 후끈거리는 복사열을 발목에 감고, 호석은 그렇게 한 발 한 발 시내로 향하는 버스 정류장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그리고.
그 낡고 오래된 버스 정류장에 태형이 서 있었다. 타오르는 더위 속에 땀으로 눅눅히 젖어내린 검은 머리카락과 녹색 티셔츠, 그리고 그 손에 엉뚱하게 들린 빨간 장미와 안개꽃 꽃다발. 못 본 사이 선이 많이 굵어진 얼굴선을 따라 땀방울이 흘러 턱에 대롱대롱 매달린 것을 무심하게 손등으로 거둬내며, 태형은 그 손에 든 꽃다발을 호석에게 불쑥 내밀었다.
"전역 축하해요, 형."
학창 시절의 둘의 관계가 어떻게 끝을 맺었었는지, 어떻게 어머니의 장례식을 찾아왔던 것인지, 제 군대 전역 날자는 어떻게 알아낸 것인지, 그것을 이 자리에서 태형에게 상기시키고 캐어 묻고 추궁할 만큼 호석은 모진 성격이 되지 못했다.
날이 더웠다,
그래서 그 모든 질문들이 귀찮았고.
날이 더웠다,
여전히 태형이 눈부셔 보일만큼.
그래서 호석은 그 쪽팔리기까지한 장미 꽃다발을 말없이 받아들었다.
달리는 버스 안, 더위에서 벗어나기 위해 한껏 열어둔 창문으로 바람과 함께 짖쳐들어오는 뿌연 흙먼지를 죄다 뒤집어 쓰면서도 호석은 창 밖으로 시선을 던지고 돌아볼 줄을 몰랐다. 무릎에 얹혀진 꽃다발은 거추장스러웠으며, 제 옆에 나란히 앉아 마찬가지로 창 쪽을 바라보고 있는 태형의 시선은 부담스럽고 거북스러웠다. 신경전을 벌이는 것처럼 둘 중 누구도 먼저 말을 걸지 않았고, 다만 버스가 터널을 지날 때 캄캄해진 틈을 타 저 좀 보라는 듯 허벅지를 쿡쿡 찔러대는 태형의 손가락을 붙잡아 가만히 옆으로 치웠을 뿐이다.
어머니가 모셔진 납골당에 들러 인사를 하고, 중국집에서 짜장면으로 대강 점심을 먹고, 어머니와 함께 살던 단칸방 집주인을 찾아 지난 겨울 맡겨두었던 제 옷가지와 어머니의 소소한 유품이 담긴 상자를 건네어 받고, 아무렇게나 눈에 띄이는 싸구려 여관방에 들어가기까지. 태형은 그림자처럼 말 없이 호석의 뒤를 졸졸 쫓았다.
낯선 방 안에서 호석을 맞이하는 것은, 빛 바랜 장판에 낡은 선풍기, 다이얼이 뽑혀 채널을 돌릴 수 조차 없는 오래된 흑백 텔레비젼.
꿉꿉한 방 안의 공기와 더위에 질색한 호석이 선풍기를 강풍으로 틀어놓고, 창문을 활짝 열어 젖히고, 입고 있던 군복을 훌훌 벗어던지기 시작하니, 방구석에 존재감 없이 서 있던 태형이 당황한 듯 후다닥 달려들어 창문에 커튼을 걷어치고는 놀란 눈으로 뒤돌아 본다.
그 일련의 행동을 환멸난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는 호석과 그렇게 눈이 마주쳤다가, 자동으로 목 아래로 끌려 내려가려는 시선을 허겁지겁 다른 곳으로 돌리는 태형의 벌건 얼굴이, 이제껏 겹겹이 쌓아두었던 짜증을 폭발시킬 기폭제가 된 것만 같았다.
"...언제까지 따라다닐거야? 너 이제 집에 가."
당연한 그 말이 뭐가 그리 억울한지 커다란 입이 벙긋 벌어졌다가, 재차 입을 꾹 다물어 물었다. 숱 짙은 잘생긴 눈썹이 잔뜩 찌푸러져 속상함을 한껏 드러내고 있었다.
"...오랜만에 만나서, 처음으로 나한테 하는 말이 고작 그거에요?"
"그럼 너는 나한테 무슨 말을 듣고 싶어서 나 전역하는 날에 거기까지 찾아왔냐? 더워 죽겠는데."
".........오랜만이라던가! 잘 지냈냐던가! 그 때는 미안했다던가! 많은데!"
"그래 태형아, 오랜만이다. 잘 지내는 것 같네. 근데 나는 너한테 미안해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어. 그러니까 이제 집에 가. 가, 좀."
짜증이 잔뜩 베인 날 선 말을 뱉어놓고 호석은 역정을 부리듯 땀에 젖은 속옷을 벗어 던지며 욕실로 들어섰다.
고등학교 때와 하나도 달라진 것이 없는 듯 했다. 저도, 태형도. 저를 좋아한다며 앞뒤 가리지 않고 불도저처럼 밀어붙여왔던 태형도, 주변의 시선과 스스로의 자격지심에 무작정 거짓말을 내뱉고 도망쳐버린 저 자신도. 사춘기 때와 다를 바 없이 늘 자기 기분이 우선이다.
틀어놓은 물줄기처럼 자신들의 과거도, 마음도, 성적 취향도, 모두 하수구로 흘러가 사라져 버리기를 소망하지만, 그것들은 깊게 내려앉은 진흙덩이 늪처럼 늘 있던 그 곳에 묵직하게 침전되어 있다. 그리고 그 날 그 때, 내리막길에서 도망쳐 온 이후 줄곧 회피하고 외면해왔던 것들을 자꾸 상기시키고 다시 시작하게 만들려는 태형이, 호석은 밉살스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심지어, 태형이라면 그것을 가능하게 만들 것임을 스스로가 가장 잘 알고 있기에 더더욱 배알이 뒤틀렸다.
찬물이 쏟아져 내리는 샤워기 밑으로 머리를 들이밀어도, 속에서부터 복잡하게 치밀어 오른 열은 사그라 들 줄을 몰랐다.
씻고 나와 알몸인 채로 속옷을 찾기 위해 짐을 뒤적거리는 호석을 향해 태형이 왈칵 역정을 부렸다.
"형, 아 좀! 겁도 없어요?! 좀 가리던가!"
"........너가 진작에 갔으면 이런 꼴 안봐도 됐을거 아냐! 너가 눈을 감던가!"
마찬가지로 열통을 터뜨리며 대꾸를 쳤다가, 가만 생각해보니 화가 치밀어 올랐다. 제멋대로 꾸역꾸역 쫓아와서 여관방 한구석을 차지하고 앉아서는, 말을 트기가 무섭게 잔소리를 내뱉고, 제 몸뚱이를 마치 숫처녀 대하듯 구는 태형의 태도에 호석은 넌덜머리가 났다. 그것은 태형이 숫제 저를 불순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의미했고, 그 사실에 어쩐지 부끄러움이나 수치심 비슷한 감정을 느끼고 있는 제 자신에 대해 비위가 상했다.
"너가 이상한거야, 너가! 나한테 달린거 너한테도 달려있고, 나한테 안 달려 있는거 너한테도 안 달려 있는데, 뭐 특별할게 있다고 아까부터 커튼을 치느니 팬티를 입으라느니 헛소리야, 헛소리가! 군대 가면 사내 새끼들 밖에 없는데 그럼 넌 거기서ㄷ"
"전 군대 안가요!! 평발이라서!"
"..........진짜 재수 없어!!!"
쿵쾅거리며 선풍기를 제 쪽으로 고정시켜 버리곤 호석은 냅다 방바닥에 누워 태형에게서 등을 돌렸다. 씩씩거리는 숨을 고르며 눈을 꽉 감고, 더 이상 태형에게 신경을 빼앗기지 않으려 잠을 청했다. 그저 이대로 무시하고 자다보면 제 풀에 지쳐서 가겠거니 하는 마음으로.
그렇게 모로 누운 등 뒤로, 살금 살금, 발소리를 죽이고 욕실로 들어가 씻는 소리가 들렸다. 그것이 오늘은 돌아가지 않겠다는 시위로 들린 호석은, 태형이 씻는 동안 욕실과 방의 불을 냅다 꺼버리고 도로 누워 자는 척, 심술을 부렸다. 아아이 진짜, 하는 욕실에서 들려오는 탄식 소리를 무시하면서.
짜증이 났다.
깊은 밤, 호석이 잠에서 깨버린 것은, 옆 방에서 들려오는 여자의 교태 섞인 신음 소리 때문이었다.
이 곳은 제가 어제까지 몸을 뉘이고 있던 내무반이 아니다. 그렇다고 어머니의 그리운 냄새가 배어있는 작은 단칸방 역시 아니다. 푼돈으로 월세를 낸 후줄근한 여관의 낡은 방구석. 프르르르, 빈약한 소리를 내며 돌아가는 오래된 선풍기. 이전 누군가가 피웠을 찌들은 담배 냄새와, 얼굴조차 알 수 없는 남녀가 흘려대는 추저분한 소리들. 두 손으로 틀어 막아도 고막을 쑤시고 들어오는 그 역겨운 소음에, 호석은 제 두 귀를 쥐어 뜯어버리고 싶기까지 하였다.
이곳에서 도망치고 싶어도 제게 남은 것이라곤, 몸뚱이 하나와 상자 속에 들은 물건이 전부. 제 청소년기를 지긋지긋하게 괴롭혀 왔던 빚이라는 놈은 어머니의 목숨값으로도 다 사라지지 못했고, 여전히 제 손에 있는 것들은 여유롭지는 못했다.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두 눈을 떴을 때, 시야에 가장 먼저 들어오는 것은 싸구려 커텐 너머의 창으로 새어들어오는 주홍빛 가로등 불빛. 그리고 그 아래, 마주하고 누워 깊게 잠긴 눈으로 하염없이 저만을 바라보고 있는 태형이다. 그 짙고 검은 눈동자, 처음 보았을 때부터 제 마음을 쥐고 흔들던 그 커다란 눈동자가, 짙은 감정의 파도를 담고 일렁이고 있었다.
"..........태형아, 여기 싫지?"
느닷없는 저의 물음에 두어번 눈을 깜박이던 태형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싫어. 근데... 내가 사는 세상이 원래 이래. 싫어도 도망갈 수 없어."
"....................."
"고등학교 때부터 사실 네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었어. ...세상 편하게 살라고. 너 좋다는 여자애들 많잖아. 너네 집 잘 살잖아. 그냥 잘 사는 것도 아니고, 아주 잘 살잖아. ...그냥 편하게 살아. 나하고 엮여서 괜히 힘들게 살지 말고. 이렇게 싫은 곳에 억지로 있지도 말고. 그러니까, 집에 가. 남들처럼 살아. 나를 쫓아다니지도 마. 나는 그저... 네 인생에 잠깐 왔다 간 학창시절의 추억 같은 존재일 뿐이야. ...잠시 폈다가 순식간에 지고 사라지는 봄꽃처럼."
그러니 추억은 추억으로, 지독했던 첫사랑은 여기서 끝마무리를 맺자며 호석은 태형의 생각을 알 수 없는 깊은 두 눈에 자신의 바람을 빌었다.
태형이 혀로 입술을 축였다.
그것은 태형이 긴장하거나 무언가를 해야겠다 마음 먹었을 때 나오는 그의 고유한 버릇임을, 호석은 알고 있다. 고등학교 이후 삼 년이 지났음에도, 그의 그러한 소소한 버릇들조차 호석은 잊지 못했다.
".....그 때, 선배가, 형이, 그렇게 가버리고. 나는 강제로 전학을 가고. 나 정말 부모님 말 잘 듣고, 아버지가 하라는 대로 얌전히 따랐어요. 공부도 했구요, 그림도 계속 그려서 원하는 대학에도 갔어요. ...재수를 좀 하긴 했지만. .......나 바보 아니에요, 나도 우리집 잘 사는거 알아요. 형 말대로 나 좋아한다는 애들도 많아요. ...근데요..."
조근조근, 크지도 않은 그 낮은 목소리만이 온 세상에 울리는 것 같았다. 옆 방의 시끄러운 정사 소리도, 가로등 불빛에 잠 못들고 울어 제끼는 매미 소리도, 낡아서 어딘가 불편한지 타닥 타닥 이상한 소리를 내던 선풍기 소리도, 그 어린 날 미술실의 그 때처럼 다른 차원의 어디론가 사라진 듯, 태형의 낮고, 감정에 짖눌린 그 묵직한 목소리 만이 호석의 귀를 가득 채우는 듯 했다.
"근데요, 진짜, 진짜... 진짜, 나도 모르겠어요. 나도 모르겠는데, 형이... 형이 너무 보고 싶었어요. 이제, 그렇게 나한테 갑자기 거짓말만 하고, 못된 말만 하고 등 돌리고 가버린 형이 너무 미웠는데, 근데, ...너무 보고 싶었어요. 보고 싶었어요. 참을 수가 없을 정도로. 진짜, 나는, 어떻게 해야될지 몰라서... 가만히 있는데도 목이 졸려오는 것 같고, 갑자기 미친놈처럼 악을 쓰고 싶어지고, 문득 길을 걷다가도 뜬금없이 눈물이 쏟아져요. ...정말 너무 보고 싶어서, 보고싶어서..."
호석은 군대 가기 전까지 늦은 밤 가끔 자신의 집에 걸려오던 무언 전화를 기억한다. 전화벨이 세 번 울릴 때까지 기다렸다가, 여보세요, 하고 받으면 먹먹하니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던 그 전화를. 누구세요라고 재차 묻지 않고 그저 제 숨소리가 그 너머까지 닿길 바라며 후우, 하고 한숨을 내쉴 때, 수화기 너머로 작게 들려오던 눈물을 삼키는 울음 소리. 말 없이 묵묵히 듣고 있다가 끊고는 이부 자리에 몸을 뉘이면, 뒤늦게 찡하게 뜨거워지는 눈시울이 참으로 원망스러웠었다.
"형은 나보고 편하게 살라고... 근데, 그게 편하게 사는 거에요? 내가 이대로 돌아가버리면 나는 형이 말한대로 편하게 살 수 있어요? 나는 언제까지 이렇게 고통 받아야 되요? 형이 내 인생에 잠깐 폈다가 사라질 봄꽃이라면, 도대체 내 삶의 봄은 얼마나 길어서 아직도 형은 내 안에서 사라지지 않아요? 잊혀지지 않아요? 또 그 봄은 어떻게 되어먹었길래, 이 세상 그 어떤 겨울보다 춥고 외로운건데요?"
마지막으로 휴가를 나갔을 때, 어머니가 말씀하셨었다. 내 친구라는 사람에게 전화가 와서는 요즘 저가 어디 갔느냐 물었다고. 친구라고 하면서 네가 군대간 것은 모른다니, 그렇게 가까운 친구는 아닌 모양이구나, 하시던 말 끝에는 저가 괜히 이상한 사람 만나서 아버지 꼴 나는 것은 아닌지 싶은 걱정이 베어있었다.
그 걱정이 마음 아팠다. 무엇을 해도 자신은 이미 불효자인 것 같았다. 그래서, 고등학교 때 잠깐 친하게 지냈던 친구인데 전학을 가서 연락이 끊겼노라며, 다시 만날 일은 없는 친구라고 호석은 대답했다. 어머니가 그 친구의 이름을 말하지 않았음에도, 이미 그가 누구인지 다 안다는 양.
김태형은,
고작 반 년 정도 친하게 지냈던 후배.
그러나,
이름조차 말하지 않았음에도 바로 누구인지 알 수 있을 정도로 가슴에 깊게 패여있는 존재.
"나는 이 여관방이 싫지만, ...형이 있어서, 형만 있으면, 나는, 나는..."
태형의 입이 꾹 다물렸다. 한껏 잠기다 못해 넘실대는 눈물이 터져나올 것 같아서이다. 늦은 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던 그 숨죽인 울음 소리가 지금 호석의 눈 앞에서 일렁인다. 주홍빛 가로등 불에 비치는 눈물 맺힌 그 검고, 커다란, 두 눈동자. 마주한 두 눈에서 호석은 그 때 그 봄날, 자신의 첫마음을 깨닫던 그 순간을 떠올렸다. 강력한 인력에 휘말려 그에게 빨려 들어간, 바로 그 순간을.
호석은 내던지든 자신의 오른팔을 태형에게 내밀었다.
그것은 항복을 의미했다.
그 내밀어진 손을, 태형은 마치 자신을 구원해 줄 유일한 존재라도 되는 양, 두 손으로 꼭 붙들어 맞잡았다. 기도하듯 눈을 감은 채 손등에 입술을 꼭 붙이고, 더 이상 참지 못해 거칠게 흘러나오는 흐느낌으로 붙잡은 그 손을 적셨다.
그 손에, 힘을 더했다.
결국 자신은 태형의 유혹에 이기지 못해 그 같지도 않게 풋내 나는 인연을 꾸역꾸역 이어가게 되었다고, 그렇게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고 스스로를 속이던 때도 있었다.
그러나 그 때 그 더운 여름날, 지긋지긋할 정도로 졸졸 쫓아오던 그 존재는 저를 외로움 속에 혼자 나동그라지지 않게 붙잡았다.
제 손을 맞잡은 뜨거운 체온에 구원 받았던 것은, 두려움과 자격지심에 스스로 내팽겨쳐 버린 자신의 달콤 쌉싸름한 청소년기의 끝자락이다.
겹쳐온 입술 사이로 축축하게 새어 들어온 눈물은, 새카맣게 타버려 공중에 재처럼 흩뿌려진 삶의 의욕을 다시 자라나게 만든 영양분이었다.
그 때 태형이 없었다면 자신은 어땠을까?
살아는 있었을까?
호석은 종종 그런 생각을 하곤 했다.
군대에서 공부한 것들로 자격증들을 따고, 군대 선임에게 제법 번듯한 자동차 정비소의 일을 소개받게 되었을 때에야 비로소 그 지긋지긋한 여관 생활을 청산할 수 있었다. 호석은 모아두었던 돈으로 겨우 어느 한적한 동네의 반지하 단칸방에 세를 들었다.
반지하 방이라 조건은 그닥 좋지 않았음에도, 스스로 독립했다는 사실에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먼지가 내려 앉은 방바닥을 걸레로 닦고, 곰팡이가 설은 벽은 깨끗이 도배를 하고, 오래되어 시끄러운 소리가 나는 엉성한 알루미늄 문짝에 기름칠을 하고, 얼마 되지도 않는 짐을 그 방으로 나르고,
그리고.
"형, 내 짐은 저기다가 놔둬죠?"
태형은 호석이 있는 반지하 단칸방으로 걸어 내려왔다.
2020.03.28.
매번 뷔홉 너무 쓰기 힘들어서 헐떡대고 있습니다.
90년대 초반? 까지도 평발은 군대 면제 대상이었습니다. 그 때는 군대 갈 사람이 많았거든요... 물론 지금은 그런거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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