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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Prince et Ses Fleur [완결]

[홉른/뷔홉/국홉] Le Prince et Ses Fleur #03

by 1mpulse 2020. 11. 18.

by Impulse

 

 

 

 

 

매일같이 씨앗을 바라보던 정국은 너무나도 오랫동안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꽃에게 점차 조급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씨앗에게 무언가 나쁜 일이 생긴걸까 불안한 마음도 들었죠. 그래서 처음으로 용기를 내어 씨앗에게 노크했습니다.

 

-똑똑

 

"어서 나와. 나는 네가 궁금해."
"......왜 맨날 쳐다보는거야, 부끄럽게!"

 

씨앗으로부터 들려온 예상 외의 대답에 정국은 놀라고 말았습니다. 자신은 그저 궁금해서 매일매일 바라본 것 뿐인데 그것이 씨앗 속의 꽃에게는 실례가 되는 줄은 몰랐거든요.

 

"네가 싫어할 줄은 몰랐어."
"...싫은 건 아냐. 부끄럽단 말야."
"왜 부끄러운데?"
"...나는 옷이 없으니까. 그런데 너는 나를 자꾸 쳐다보잖아, 나갈 수도 없게..."

 

정국은 씨앗 속의 꽃에 말에 그만 두 뺨이 새빨갛게 달아오르고 말았습니다. 벌거벗고 있는 꽃을 씨앗 너머로 지켜보고 있었다니! 그 민망함과 부끄러움이란! 정국은 두 손으로 자신의 눈을 가리고는 부리나케 집으로 도망치고 말았습니다.

 

 

 

그 날부터 정국은 씨앗에게 등을 보이거나 눈을 가린채로 다가가 말을 걸었습니다. 무슨 색을 좋아하는지,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할 때 행복해지는지. 그리고 꽃의 대답을 토대로 그에게 선물할 옷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한땀 한땀 정성스럽게, 그가 좋아해 주었으면 하는 마음을 담아서. 그리고 하루 빨리 꽃이 자신이 만든 옷을 입고 씨앗으로부터 나올 수 있길 바라면서요.

 

그리고 마침내 옷이 완성한 날, 씨앗에게 다가가 그 옷을 내밀어보였습니다.

 

"자, 여기 네 옷을 만들어 왔어. 이걸 입고 어서 나와. 나는 네가 궁금하단 말야."
"...못 나가겠어."
"왜?"
".............그냥."

 

정국은 당황스러웠습니다. 부끄럽다고 해서 옷도 만들어 주었고, 옷을 만들며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는 동안 우리는 친해진 줄 알았는데. 제대로 알 수 없는 이유로 제게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려는 꽃이 얄미웠습니다. 자신을 만나기 싫어 그냥 아무렇게나 고집을 부리는 것 같아 속이 상했습니다. 모습도 본 적이 없는 꽃에게 거절을 당한 것 같아 정국은 그만 심술이 나고 말았습니다.

 

"마음대로 해! 나는 이제 몰라!"

 

쿵쾅쿵쾅 화가 난 발걸음을 하고 집으로 들어가 씨앗 속의 꽃에게 들으라는 듯 세게 문을 닫아버렸습니다. 그리고 이내 자신이 꽃에게 무례한 짓을 저지른 것에 대해 마음이 불편해지고 말았죠. 그렇지만 그것을 사과할 수 있는 용기가 정국에게는 없었습니다.

 

정국은 그 날 처음으로 양을 30마리나 세고 나서야 겨우 잠이 들 수 있었습니다.

 

 

 

-똑똑

 

정국은 누군가가 자신의 집 문을 노크하는 소리에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누구일까.

 

문을 열은 순간, 햇빛과 함께 자신의 눈 속으로 밀려들어온 존재에게 할 말을 잃고 말았죠. 쑥쓰러운 웃음으로 활짝 빛나는 그는 정국이 그토록 오랫동안 맞이하기를 기대하던 그의 꽃이었습니다. 굳이 그가 스스로를 소개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어요. 자신이 선물한 옷이 그토록 잘 어울리는 아름다운 이는 아마 이 세상에 그 꽃 외에는 없을테니까요. 

 

그토록 아름답고 빛나는 존재.

 

 

 

 

그 꽃은 그의 꽃이 되었습니다.

 

 

 

 

 

 

 

 


 

 

 

 

 

 

 

남준의 왕국을 떠나 여행을 하던 중, 정국은 다양한 별들을 거치며 그곳에서 자신의 꽃과 똑같이 생긴 사람들을 여러번 마주쳤습니다. 어떤 이는 은하수를 여행하는 이들의 안내자가 되어주기도 했고, 어떤 이는 지친 별들을 향해 춤을 추며 노래를 부르기도 했으며, 또 어떤 이는 커다란 실타래를 떠안고 누군가에게 입힐 옷을 끊임 없이 뜨개질 하고 있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점점 정국은 자신의 꽃을 닮은 사람들이 세상에 많이 있다는 것에 익숙해지고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정국이 재미있다고 생각한 것은, 그들은 하나같이 스스로를 호석이라 소개했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들이 호석'들' 이라면, 자신의 꽃도 그들 중 하나인 호석인 걸까. 정국은 잠깐 그렇게 고민해 보았지만, 자신의 별에 있는 그는 호석이기 이전에 자신의 꽃이었으므로 그는 자신의 꽃이 맞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느 날, 정국은 여행을 하던 중 이상한 소리를 들었습니다.

 

-짜잔---!

 

그 묘한 소리는 계속해서 반복되고 있었기에, 정국을 궁금함과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소리가 나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길 수 밖에 없었죠.

 

-짜잔---! 짜잔------!!!

 

그 곳에는 자그마한 무대가 있었고, 그 소리는 무대 위에 선 사람이 내고 있는 소리였습니다. 그리고 그 무대 앞에는 호석이 앉아있었습니다. 무언가 잡다한 물건들로 가득 둘러싸인 채 말이죠.

 

무대 위의 사람은 무언가 분주해 보였습니다. 무대의 커텐 뒤로 사라진다 싶더니, 얼마 후 귀엽게 생긴 새 모양 조각을 들고 나와 그럴싸한 포즈와 함께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짜잔----!!! 당신을 위해 내가 찾아 온 예쁜 새에요!"

 

그러면 그 앞에 앉은 호석은 와아아 기뻐하며 신나게 박수를 쳤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이 들고 온 새 조각에 대해 여러가지 말들로 칭찬을 해주었습니다. 그 말을 쑥쓰러운 듯 묵묵히 듣고 있던 사람은 호석의 칭찬이 다 끝났다 싶으면 입을 크게 벌려 활짝 웃고는 다시 무대 위로 올라가 근사하게 인사를 해보였습니다. 그리고 커텐 뒤로 사라졌죠. 그리고 또 다시 얼마 후, 짜잔---!! 하는 말과 함께 새로운 물건을 들고 나타는 것이죠. 그렇게 그가 들고 온 물건들로 호석의 주변이 빼곡히 채워진 것이었습니다.

 

정국은 호석의 옆에 나란히 앉았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이 새로운 물건을 들고 짜잔---! 하고 나올 때, 호석을 따라 와아아! 하고 함께 탄성을 내지르고 열심히 박수를 쳤습니다. 그게 이 별의 규칙인 것 같았거든요. 무슨 의미인지는 모르겠지만 정국은 그것이 재미있어 보였습니다. 그러한 정국에게 호석은 선물로 받은 물건을 내보이며 자랑했습니다.

 

"이것 봐! 태형이가 나한테 선물로 준 도토리 바구니야! 너무 귀엽지 않니?"
"정말 멋진 도토리 바구니네요! 그는 좋은 선물을 고르는 훌륭한 재주를 가지고 있나봐요!"

 

호석의 자랑에 맞장구를 치며 한껏 칭찬하자, 태형이라 불리운 사람은 아까보다 갑절 정도 크게 웃으며 박수를 치고 제자리에서 콩콩 뛰며 기뻐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중에 최고로 왕자님처럼 멋들어지게 인사를 하고는 신이 난 발걸음으로 무대 뒤로 사라졌죠. 

 

얼마가 지난 후,

 

"짜잔---! 이 별에 새로 온 손님을 꼭 닮은 인형을 제가 찾아왔어요! 토끼 인형이에요!"

 

호석 뿐만 아니라 자신에게도 선물이라니! 정국은 너무나도 기뻐 아까와 마찬가지로 와아아! 크게 소리를 치며 힘껏 박수를 쳤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말로서 그 선물에 대해 칭찬하고 고마워했죠. 태어나서 처음으로 받아보는 선물이었거든요. 그 기쁨에 화답하듯 태형은 또 다시 근사하게 인사를 하고 무대 뒤로 사라졌습니다.

 

그 뒤로도 태형은 계속해서 정국과 호석에게 물건을 선물을 가져왔습니다. 그리고 그 때마다 정국과 호석은 기쁜 마음으로 환호하고 그의 선물에 즐거워했습니다. 맛있는 솜사탕, 반짝반짝 빛나는 조약돌, 뚜껑을 열면 아름다운 노래가 나오는 오르골, 등등...

 

그러나 그것도 여러 번 반복이 되자, 정국은 슬슬 싫증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박수를 치던 손바닥도 발갛게 달아올라 얼얼했고, 환호를 하느라 소리를 지른 목도 아파왔습니다. 

 

선물 받은 몇몇 물건들은 마음은 고맙지만 자신이 좋아하지 않는 것들이어서 조금 곤란하기도 했습니다. 신맛이 나는 사과를 좋아하지 않는데. 하지만 그렇게 말한다면 태형이 슬퍼할 것 같아. 정국은 좋다고도 싫다고도 말하지 못하고 애매하게 웃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정국이 어떤 말을 해야 좋을지 몰라 머뭇거리고 있으면, 옆에 있던 호석이 대신 그것들을 칭찬해주곤 했죠. 

 

"태형이가 색깔이 예쁜 사과를 선물로 가져왔구나! 꼭 클로버의 희망을 담은 것 같은 녹색 사과야!"

 

신기하게도 그는 모든 물건에서 좋은 부분을 찾아내어 긍정적으로 만드는 재주가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호석의 그러한 칭찬을 듣고 나면 정국은 정말로 그 물건들이 좋아지곤 했어요. 호석은 무언가를 특별하게 만드는 사람이었습니다.

 

 

 

"...당신은 태형이 준 모든 물건들이 다 그렇게 좋은가요?"

 

태형이 또 다른 선물을 찾기 위해 무대 뒤로 사라졌을 때, 정국은 호석에게 그렇게 물었습니다. 

 

"아니, 꼭 그렇지는 않아."

 

그리고 그의 솔직한 대답이 돌아왔을 때 정국은 적잖은 충격을 받고 말았습니다. 박수를 열심히 치느라 새빨갛게 부어오른 호석의 손은 무척 아파보이는데다, 좋아하지도 않는 물건을 받았음에도 그렇게나 좋아하고 칭찬할 수 있다는 것이 믿기지가 않았거든요. 

 

"하지만 나는, 즐거워하는 나를 보고 즐거워하는 태형이를 보는걸 즐거워 하거든. 생각해 봐. 태형이는 저 커튼 뒤에서 우리가 어떤 것을 좋아할까 수 많은 것들을 두고 고민을 하고 있을거야. 또는 예쁜 물건을 발견해내고 우리에게 보여줄 것을 기대하며 뛸 듯이 기뻐하고 있겠지. 그 고민과 생각과 마음이 진짜로 태형이가 우리에게 주는 선물인거야. 나는 그 선물이 정말로 기쁘고 소중해."

 

호석의 말에 정국은 자신이 조금 부끄러워졌습니다. 그리고 문득 자신의 꽃을 떠올렸습니다. 그를 위해 많은 것들을 준비하던 자신을 떠올렸습니다. 자신이 선물한 옷을 입고 조잘조잘 떠들어대던 자신의 꽃을 떠올렸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별을 떠나 여행을 시작한 이유를 떠올렸습니다. 

 

 

 

...정국은 의기소침해지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태형과 호석에게 작별을 고하고 다시금 여행을 떠났습니다. 태형이 그에게 선물로 주었던 물건들과 그 물건에 담긴 마음들과 함께 말이죠.

 

 

 

 

 

 

 

 

 

 

정국은 주머니에서 꽤나 낡은 토끼 인형을 꺼내 나와 호석에게 보여주었습니다.

 

"여행을 다니는 동안 다른 물건들은 어딘가에 떨구거나 잃어버리고 이것만 남았어요. 분명히 잘 챙겼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사라지고 없는 거에요. 이 사실을 태형이 알게 되면 그는 분명 속상해 할텐데."

 

나는 물건을 잘 잃어버리는 편은 아니었지만, 누군가로부터 받은 선물을 잃어버렸을 때의 상실감과 미안함을 잘 알고 있습니다. 물건 뿐만 아니라 그들의 마음과 그들의 추억까지도 함께 잃어버린 것 같으니까요. 그리고 때론 상상했죠. 내가 잃어버린 그 물건들이 어딘가 내가 모르는 곳에 자기들끼리 모여 나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요.

 

자신이 잃어버린 물건들을 헤아리는 듯 고개를 숙이고 낡은 토끼인형을 만지작 거리는 정국을 달래기 위해, 나는 셔츠 가슴 주머니에서 수첩을 꺼내어 상자 하나를 그려 그에게 건네었습니다.

 

"이 상자 안에는 네가 잃어버린 그의 선물들이 보관되어 있단다. 그러니 나중에 네가 다시 그를 만나게 되더라도 그는 속상해 하지 않을거야. 모두 그 상자 안에 있을테니까."

 

내가 건넨 상자가 그려진 종이를 들고 한참을 바라보던 정국은 이윽고 활짝 웃었습니다.

 

"맞아요! 모두 이 안에 잘 들어있네요! 나는 이 상자가 마음에 들어요!"

 

 

 

 

 

 

 


2020.11.11

진실된 마음에는 진실된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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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Prince et Ses Fleur #03

by Impulse 매일같이 씨앗을 바라보던 정국은 너무나도 오랫동안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꽃에게 점차 조급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씨앗에게 무언가 나쁜 일이 생긴걸까 불안한 마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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