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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MY, ME, MINE, MYSELF [완결]

[막라홉] I, my, me, mine, #1

by 1mpulse 2020. 4. 27.

by Impulse

 

 

 

술이 알딸딸하게 오른 윤기가 삿대질을 하며 외쳤다.

 

"야 이, 두꺼비 같은 셰에끼들아!"

 

호석은 양손으로 제 얼굴을 숨겼다.

 

 

 

 


 

 

 

 

평생 돈 걱정 없이 살 금수저들이 아니고서야, 유학생들의 가장 큰 지출이자 난제는 학비와 주거비이다. 학비가 없으면 제 나라로 돌아가야 하므로 열외로 치자면, 역시 가장 고민이 되는 지출은 주거비가 된다. 호석은 이 미국 대도시의 스튜디오 혹은 원베드룸에서 몇 년이고 생돈 다 내며 여유있게 혼자 살 만한 경제적 백그라운드를 지닌 금수저 출신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남의 집에 눈치 보면서 낑겨 사는 생활에 싫증 내지 않을 만큼 주거생활에 무감각한 사람 또한 되지 못했다. 스튜디오에 혼자 살 수 있는 돈으로 자기가 선택할 수도 없는 룸메이트의 눈치를 보면서 낑겨 사는 기숙사 생활은 애초에 거론할 가치조차 없는 선택지이고.

 

그래서 호석은 제 스스로 투베드룸의 아파트를 렌트해 룸메이트들을 구하기로 마음 먹었다. 자신이 그 집의 관리자가 된 이상 제가 마음에 드는 인테리어로 꾸밀 수도 있고, 마음에 드는 사람들만 룸메이트로 들일 수 있으며, 눈치를 주는 입장으로 룰도 정할 수 있고, 아울러 집세도 아낄 수 있는 장점 뿐인 선택지를 고르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다만, 이 방법에는 마땅한 룸메이트들을 구할때까지의 경제적 리스크가 따르는 단점이 있지만, 호석에게는 그것을 상쇄시킬 수 있는 믿는 구석이 있었다.

 

 

"야, 지민아. 너 나랑 같이 아예 나가서 살래?"
"...형, 지금 프로포즈 하는 거에요? 나 너무 떨리는데?"
"뭐래? 나 방 계약해서 나갈건데 룸메이트로 따라 나올거냐고 묻는 거잖아."

 

첫번째 룸메이트 후보 박지민은 한 살 어린 동생으로서, 현재 호석이 살고 있는 집의 하우스메이트들 중 하나이다. 아니, 정확하게는 현재 살고 있는 집이 지민과 호석의 첫 하우스메이트 생활은 아니다. 지민과의 인연은 꽤나 오랜 것으로, 처음 유학을 왔을 때 하숙을 묵게된 한국인 가정의 또 다른 하우스메이트로 만난 것이 그 시작이었다. 비슷한 시기에 유학을 시작한 것도 있고, 오지랖 잔정이 많아 이것저것 챙겨주는 호석을 많이 의지하는 듯 하더니만, 호석이 이사를 갈 때마다 기를 쓰고 쫓아서 함께 집을 옮겨 같은 지붕 아래 생활을 하게된 것이 어언 4년차로 접어들고 있었다. 따라서 이번에 나가 산다고 해도 분명 쫓아올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에, 못해도 월세는 당분간 반반씩 부담할 수 있겠거니 하는 안정감이 있었다.

 

"나의 사랑하는 호석이 형. 물어뭐해요. 지구 끝까지라도 함께 하겠습니다."

 

종종 이렇게 재미도 없고 어처구니도 없는 농담을 해대곤 하지만, 지민은 오랫동안 알아온 증명된 하우스메이트이기에 새로운 생활의 일원으로서 손색이 없었다.

 

 

 

"태형아, 너 지난번에 지금 살고 있는 집 별로라고 하지 않았어?"
"아, 맞아요. 같이 사는 애가 자꾸 집에 자기 여자친구 불러들여서 죽을거 같아요. 그 때마다 형 생각나고..."
"그렇게 스트레스 받으면 그냥 너 우리집 룸메이트 할래? 내가 방 계약해서 나가려고 하거든."

 

두번째 후보 김태형은 예전 아르바이트로 일하던 한식당에서 함께 일하다 알게 된 한 살 어린 동생이었다. 현재는 호석이 합법적인 아르바이트로 학교에서 조교로 일하게 되면서 더 이상 함께 일하지는 않게 되었지만, 원체 서글서글하니 사람 만나기를 좋아하는 태형은 그 뒤로도 호석과의 연락을 끊지 않았다. 불쑥 찾아와 보고 싶어서 왔다더니만 정말 얼굴만 보고 가거나, 갑자기 전화를 해서는 뜬금없이 좋아하는 노래를 바친다며 불러제낀다던가, 여하튼 예측 불가능한 엉뚱한 면이 귀엽고 재미있어 어울려 주다보니 이래저래 알고 지낸지가 벌써 3년이 좀 넘어간다. 함께 아르바이트를 했을 때에는 그 엉뚱함 탓에 종종 뒤를 봐줘야 했을지언정, 시키는 일은 곧잘 해냈고 호석이 하는 말들은 잘 따르는 아이라는 인상이 있어, 착한 동생이니 함께 산다고 해도 큰 말썽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저를 생각해 준 거에요? 나 진짜 감동이다...! 당연히 하죠!"

 

딱히 태형을 생각해서 룸메이트 제안을 했다기 보다는 이해관계가 맞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으나, 어쨋던 머리수가 채워지면 모두의 금전적 부담이 줄어들기에 태형의 답변은 환영할 만한 것이었다.

 

 

 

"정국아, 너 독립해서 나와 살고 싶다고 했었지?"
"예. 형과 살고 싶죠."
"어?? 그래? 그럼 나 이번에 방 계약해서 룸메이트 구하는데, 그건 어때?"

 

세번째 후보 전정국은 같은 과 학생이었다. 태어나길 미국에서 태어나 이중국적을 가진 정국은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한국에서 보내다 미국으로 가족들과 다시 돌아온 케이스로, 한국에서 군대를 다녀와 미국의 대학으로 편입을 한 호석과는 세 살이란 나이차가 있었으나 얼추 비슷한 이수 단위를 가지고 있었다. 우연히 한 수업에서 만나 함께 그룹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되면서 친해진 것을 계기로 호석의 뒤를 졸졸 쫓아다니며 거진 같은 수업을 듣더니만 결국 호석을 따라 석사 과정에도 뛰어들었다. 정국과는 학교에서 거진 내내 붙어있는 사이인데다 함께 프로젝트나 과제를 진행하며 쌓인 신뢰가 제법 두터웠기에 룸메이트로 들이면 여러모로 편할 것 같았다.

 

"진짜죠?! 내거라고 나랑 약속한거에요? 다른 사람한테 주기 없기에요?"

 

이미 마음에 정한 룸메이트 머릿수는 채워졌으니 다른 사람들에게 룸메이트 제안을 할 필요도 없으므로 당연하게 남한테 줄 일은 없다며 호석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호석아, 너 임마 도화살 조심하라고 내가 몇 번을 말했는데...!"
"뭔 도화살이래 맨날 이 형은. 이공계라서 주변에 여자도 얼마 없고 여자친구도 없는 사람한테 무슨 도화살이 붙어요. 지긋지긋허다 아주."

 

룸메이트를 세 명 들여서 새 집으로 이사를 갈 것이라는 이야기에 대뜸 윤기가 역정을 내며 한소리 했다.
윤기는 한국에서부터 호석의 선배였으며, 호석이 미국으로 유학길에 오르는데에 많은 도움을 준 고마운 사람이었다. 좋은 학점으로 석사 학위도 수료해서는 미국의 번듯한 직장에 무사히 취업을 한 민윤기는 태생부터가 참으로 순수한 이공계임에도 그와는 걸맞지 않은 말들을 걸핏하면 내뱉고는 했다. 사주라느니 관상이라느니 기운이라느니. 그런 것들을 무시해선 안된다며, 특히 호석에게는 사주에 낀 도화살을 조심하라고 경고했었다. 자기가 하는 말은 잘 들어맞는다며 고등학교 때 별명은 애기무당이었다는 둥 겁도 주면서. 

 

겁이 많은 호석은 입으로는 안 믿는다 하면서도 그 말을 완전히 떨쳐버릴 수가 없어 미국에 온 뒤로는 왠만하면 이성을 멀리하고 보수적이 되어갔다. 아니, 연애회로란 것을 납땜하여 아예 틀어막아버렸다. 덕분에 호석은 공과대 컴퓨터실의 지박령이 되어 한 눈 팔 곳 하나 없이 건전하고도 공부에 매진한 모범적인 유학 생활을 몸소 실천하고 있었다. 졸업식 때 우수학생으로 단상에 올라갈 것임이 확실한 훌륭하고도 완벽한 학점은 호석의 피눈물 나는 독수공방의 역사이자 증거였다. 그런데, 새로 집을 빌려서 남탕을 만들겠다는데도 한다는 소리가 또또또 그놈의 도화살을 조심하라니. 호석은 부아가 치밀었다.

 

"맨날 사주니 기운이니 어쩌구 하는데요 형, 과학과 수학으로 만들어진 것들을 다루면서 대체 왜 그런 미신을 믿는 거에요? 너무 모순된거 아녜요?"
"정호석 이 수학의 근간을 모르는 녀석아. 사주와 관상은 통계학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 무지몽매한 너어어어는 진짜 내 말 안듣다가 큰코 다친다. 너 나중에 나 찾아와서 질질 짜구 그러기만 해봐, 아주. 너 그 집 룸메이트 셋 들여서 아주 바람 잘 날 없을거다. 두고봐라. 지금의 너 자신을 후회하는 때가 온다, 반드시."
"아주 저주를 하네, 저주를 해..."

 

 

 

호석에게는 그럴싸한 꿈이 있었다. 제 친한 동생들과 한지붕 아래 모여 살며 다 같이 친해져 하하하 허허허 함께 놀기도 하고 유학 생활과 취업, 비자 문제 등 정보 교환도 하고 상호간의 인맥도 쌓으며 모두 함께 윈윈하는 생활, 그것이 호석이 상상하던 그림이었다. 지극히 평범한 유학생의 지극히 헤테로적인 예상지가 아닐 수 없었다.

 

다만, 인생이란 것은 대체적으로 꿈과 현실의 괴리감에 배신당하며 경험치를 쌓아가는 여정이다.
물론 호석의 꿈과 현실 중 어느 것이 더 비현실적인지는 생각해 볼 여지가 있는 부분이긴 하다만.

 

"얘들아, 우리 앞으로 잘 지내보자!"
"형이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가 있어요?"
"형이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가 있어요?"
"형이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가 있어요?"

 

방을 계약하고, 집 안을 청소하고, 가구들을 들이고.
뿌듯한 마음을 안고 세 명의 룸메이트들을 한 자리로 불러모아 서로를 소개시켜 주며 기운차게 미래를 다짐하는 호석에게 세 명의 룸메이트들이 한 마음 한 뜻으로 불만을 담아 외쳤다. 별 것 없는 집 안에 세 남자의 억울한 외침이 마치 메아리처럼 울려퍼진다.

 

"형, 나랑 같이 산 시간이 얼만데...! 그런데 새 집을 계약하면서 어떻게 나 말고 다른 놈팽이들을 들일 수 있어요?!"

 

이제껏 한 지붕 아래서 둘이서만 같이 산 것이 아닌데, 세삼스레 다른 룸메이트들이 더 있다는 것이 뭐 그리 억울한 것인지 호석은 지민을 이해할 수 없었다. 게다가 투베드룸의 아파트를 계약했는데 무슨 수로 둘이서 계약기간 동안 그 방세를 다 낼 수 있단 말인가. 한달 방세가 얼마인지, 부담이 안되려면 적어도 네 명은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했을 때 뭐에 홀린 듯이 고개만 끄덕끄덕 하던 녀석이 이제와서 다른 룸메이트들이 있다는 것을 항의한다는 것 자체가 어이 없는 말이었다.

 

"형, 나 스트레스 받는거 걱정되서 같이 나가 살자고 한 거 아니었어요? 그런데 어떻게 나 말고 다른 놈팽이들을 들일 수 있어요?!"

 

태형은 심지어 오해를 하고 있었다. 딱히 그가 스트레스를 받고 있기에 구원의 손길을 내민 것이 아니라, 이사를 가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던 것이 마침 기억이 나 룸메이트를 제안했을 뿐이다. 게다가 태형이 스트레스를 받는 이유는 저와 같이 살던 룸메이트가 방에 자꾸 여자를 끌어들이는 것 때문 아니었던가. 그 때문에 새 집의 룸메이트들은 그럴 일이 없도록 집주인인 자신이 잘 다스리겠다고 말 했을 때 웃으며 자신은 그럴 일 없으니 안심하라던 녀석이 이제와서 다른 소리를 한다는 것 자체가 배신이자 배반이었다.

 

"형, 이 집도 형도 다 내꺼라고 약속 했잖아요! 그런데 어떻게 나 말고 다른 놈팽이들을 들일 수 있어요?!"

 

...이 새끼 정국의 오해가 제일 또라이 답이 없었다. 가족들로부터 독립해 나와서 룸메이트를 하겠냐는 제안이 어떻게 뒤바뀌면 집도 자신도 다 제것이 된다는 것인지 골백번을 고쳐 생각해도 이해가 되질 않았다. 지금 현재 저와 함께 공과대 석사과정을 밟고 있는 인간이 어떻게 이러한 비논리적인 사고체계를 가지고 비상식적인 결론을 도출해 낼 수 있는 것인지. 약 15% 두려움과 15% 경외심과 70%의 환멸이 잘 버무려져 호석의 얼굴에 고대로 떠올랐다.

 

"....너희들 하나같이 서로 놈팽이라고 부르면서 되게 싫어하는 것 같은데, 오늘 처음 본 사이들 아니야? 근데 누군지도 모르면서 진짜 그렇게나 서로 싫어?"

 

세 명이 하나같이 말해 무엇하냐는 표정을 하고 서로가 서로를 죽일듯이 노려보며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니, 어지간히도 싫었던 듯 싶어 호석은 한숨을 내쉬었다. 참 좋은 동생들과 함께 할 즐거운 생활들만 생각했을 뿐, 당사자들에게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었다는 것을 미처 생각하지 못한 자신을 깨달았다. 아울러 자신의 모자랐던 배려와 이기적인 생각 탓에 이리저리 휘둘려서는 짐 싸들고 집을 나온 동생들에게 너무나도 미안하고 마음이 무거워졌다. 이렇게까지 싫어하는데 붙잡아 두는 것도 민폐겠구나. 호석은 이 문제를 해결할만한 논리적 결론을 도출했다.

 

"그럼 어쩔 수 없네. 괜히 바람만 넣은 것 같이 되어서 미안하게 됐다, 얘들아. 너희들이 이렇게까지 싫어하는데 붙잡아 두는 건 예의가 아닌 것 같으니까, 그냥 다 각자 다른 집 찾는게 좋을 것 같아. 그 사이 난 다른 룸메이트 찾을게. 너희가 새 집 찾는 동안 집세는 안 받을 테니까 그건 걱정하지 말고."
"그건 안돼죠!!!!"
"그건 안돼죠!!!!"
"그건 안돼죠!!!!"
"......??? 뭐여, 왜 안돼?? 너희 같이 사는거 싫다면서. 그럼 어떻게 하자는 거야?"
"그냥 살게요, 형!!!! 제발!!!!!!!"
"그냥 살게요, 형!!!! 제발!!!!!!!"
"그냥 살게요, 형!!!! 제발!!!!!!!"

 

별 일이 다 있었다. 그렇게 싫어 죽겠다던 녀석들이 다른 방편을 제시하니 그렇게는 못하겠다고 입을 모아 반대하며 애원했다. 심지어, 미리 짜맞추기라도 한 듯 내뱉는 말마다 어쩜 그리 동기화가 되어 똑같은 말들을 해대는지. 그 모습이 호석의 눈에는 놀라움을 넘어서 흡족함으로, 더할나위 없이 잘 어울리는 세친구라고 느껴졌다. 어쩌면 이 셋은 그저 서로 너무들 닮아서 거부감을 느꼈을 뿐, 사실 지내다보면 세상 누구보다도 친해지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큰그림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생각하는 정호석은, 정호석이었다.

 

 

 

 


스튜디오 = 원룸 
하우스 = 흔히들 생각하는 마당 있는 미국집
하우스메이트 = 집 한 채에 모여 사는 사람들 (종종 룸메이트라고 하기도 함)
아파트 = 우리가 생각하는 아파트. 방 종류는 스튜디오부터 쓰리 베드 룸 등 다양함 (당연하게도) 
룸메이트 = 아파트의 한 실에 모여 사는 사람들 혹은 룸셰어 하는 사람들 (후자의 의미가 큰 편)
룸셰어 = 방 하나를 같이 쓰는 것

 

혹시 미묘한 차이를 헷깔려하시거나 용어가 익숙하지 않으신 분들을 위해 적어둡니다. 저도 옛날엔 헷깔려했던 거라서요. 그러나 설명이 필요한 글은 좋지 않은 글인디... 하아... (자괴감)

 

내가 썼지만 정헤테로... 진짜 환장하겄네...

 

핫쒸 다음주에 올리려고 했는데 오늘 포도를 한 알 따먹어서 기분이 좋아가 설라무네 쐬주도 한따까리 하고, 크으으으 그래서 기냥 술김에 막 올려버리는거에요! 나중에 잠수함패치 들어갈지도 모르겠군요...

[2019.03.02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