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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홉 기획] NUMBER OF CASES

[국홉] NUMBER OF CASES #04

by 1mpulse 2022. 2. 4.

by Impulse

 

 

 

 

 

 

 

- 하나같이 맘에 안들어! 다들 멍청해! 짜증나! 건방져!

 

초등학교 2학년 늦봄의 일이다. 하교길에 다짜고짜 바닥에 가방을 집어던지며 화를 내는 원에게 호석은 영문을 몰라 어안이 벙벙해졌다. 무슨 일일까. 눈을 동그랗게 뜨고 빤히 쳐다보는 호석에게 원은 여전히 씩씩대며 소리를 쳤다.

 

- 왜 다들 내 말을 안듣는건데?! 내가 반장이잖아! 근데 왜 다들 네 말만 듣느냐고! 내 말이 그렇게 우스워?!
- 무슨 말이야...?
- ...아까! 교실에서!! ...아니, 오늘 하루 종일!!

 

화가 나 새빨갛게 달아오른 얼굴과 억울한 듯 울먹임 섞인 목소리는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이 꼭 그랬다. 자신을 주체하지 못한 나머지 씩씩대며 드러낸 이빨은 날카로운 송곳니가 도드라지고 두 눈의 홍채는 파랗게 변해서는, 머리 위로는 제 감정대로 바싹 젖힌 뾰족한 잿빛 귀가 제멋대로 튀어나와 있었다. 금방이라도 동물형질로 변이를 해 난동이라도 부릴 듯 위태로운 상태였기에. 호석이 허겁지겁 그 머리 위로 삐져나온 귀를 두 손으로 감췄다. 그 행동에 자신의 상태를 깨닫고 조금은 누그러진 듯, 그러나 여전히 신경질이 가득 찬 목소리로 원은 여전히 성질을 부리며 화가 난 이유에 대해 늘어놓았다.

 

원인은 -적어도 호석이 생각하기엔- 별 것 아닌 일이었다. 2학년이 되어 반장으로 선출이 된 원은 아마도 그 기념으로 반 아이들 모두를 모아 단체로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줄곧 가지고 있었던 듯 하다. 그래서 다같이 하면 재미있을 것 같은 게임을 혼자서 만들고는, 반 아이들에게 놀이 방법을 한껏 설명하고 다같이 놀자며 제안을 했다. 다만 원의 상상이나 계획이 현실과 달랐던 것이 문제였다. 안타깝게도 많은 아이들에게서 반응이 그닥 좋지 않았다. 누군가에겐 설명이 너무 어려웠고, 누군가에겐 그닥 끌리는 놀이처럼 느껴지지 않았고, 또 누군가는 그냥 원이 강압적으로 시키려드는 태도가 마음에 안들었고, 기타 등등. 아이들 숫자 만큼이나 반응도 제각각인 것이 당연했다.

 

물론 흥미를 보이며 해보자는 아이들도 많았다. 호석을 포함해서. 그리고 내키지 않아하는 아이들을 설득하며 다닌 것도 호석이었다. 그냥, 다같이 노는 것이 재미있을 것 같았으니까. 설명이 너무 어렵다는 친구들에겐 알기 쉽게 풀어서 설명했고, 그닥 끌려하지 않는 친구들에겐 그래도 한 번 해보면 재미있을 것이라 권유했고, 원의 태도가 마음에 안든다는 친구들에겐 그의 태도를 변호하며 달래고 회유했다. 그저 그 뿐이다. 호석은 그저 자신이 하고 싶었던 것을 했다.

 

하교 즈음해서는 마음을 바꾼 아이들이 대다수였다. 그리고 학교가 끝난 후 다같이 모여 언제쯤 노는 것이 좋을까 날자를 정했다. 원과 호석이 날자와 시간을 제안하고 손을 들어 다수결로 선택을 했는데, 호석 쪽이 더 많은 선택을 받아 날자가 결정되었다. 물론 호석은 아이들이 그 날을 더 선호했기 때문이라고 인식했지만, 원에게 있어서는 그렇지 못했던 듯 했다. 아이들이 내내 자신의 말을 무시하다가 호석의 말을 듣고 마음을 바꾸고, 죄다 호석이 선택하는 쪽으로만 쫓아가는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원은 그것이 반장인 자신에 대한 도전이자 위협으로 받아들이고 화가 난 듯 했다.

 

- 그냥 내가 말한 날자가 더 놀기 편한 애들이 조금 더 많았나보지. 그리고 너가 말한 날자가 좋다고 하던 애들도 많았잖아.
- 그래도...! 반장인 내가 하자고 할 땐 다들 싫다고 하다가 왜 너가 하면...!
- 처음 들어보는 게임이니까 잘 몰랐대. 그러다 다른 애들 말 듣고 같이 하고 싶어졌다고 그랬잖아. 나도 네가 만든 게임을 진짜로 해보고 싶었단 말이야. 그래서 애들한테 하자고 했고.
- 그건 내가 만든 게임이잖아! 내가 하자고 한 게임이잖아! 왜 네가 멋대로 설치는데!
- 너가 하고 싶어해서...! 난 네편 들어준건데 왜 화를 내!
- ............내편?
- 그래! 우리 유치원 때부터 짝꿍이잖아! 네가 하는 건, 나도 재밌으니까...! 그러니까 너가 하자는 놀이, 나도 했으면 좋겠어서 그랬다고!
- .........
- 그러니까 이제 화 좀 그만내고, 그 게임 어떻게 하면 다같이 더 재밌게 놀 수 있을지 생각하자, 응?

 

호석을 빤히 바라다보던 원은 마치 그의 말을 곱씹는 듯 입 속으로 '내편', '짝꿍' 같은 단어들을 되뇌이다가, 마음이 풀렸는지 바닥에 떨어진 자신의 가방을 주워 들었다. 그리고 무슨 일이라도 있었냐는 양, 호석에게 어깨동무를 하고 자신이 만든 놀이의 룰에 대해서 열심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기분이 나아진 듯 보였다. 덩달아 호석도 다시 기분이 좋아졌다. 새롭게 하고 놀 놀이에 대해 잔뜩 기대에 찼다.

 

 

 

 

 

며칠 후,
호석은 반 아이들과 함께 놀이터에서 원이 만든 놀이를 하며 신나게 놀다가 열쇠를 잃어버렸다.

 

그리고 그 날 호석은 제 집 앞에서, 제 집 열쇠를 들고 있는 조금 이상하고 귀여운 아이를 만났다.

 

 

 

 

 

 


 

 

 

 

 

 

정국은 얼마 전부터 불쾌한 경험들을 겪고 있었다.

 

어느 날 혼자 복도를 걸어가고 있을 때 누군가 발을 걸어왔다. 무방비했던 상황이었던 만큼, 정국은 하마터면 중심을 잃고 넘어질 뻔 했다. 뭐지? 제 발을 걸은 사람이 누구인지 확인하기 위해 고개를 돌리자, 

 

"뭐해? 눈깔 똑바로 안뜨고 다니냐."

 

한 학년 위의 선배가 빙글빙글 기분 나쁜 웃음과 함께 그런 시비조의 말을 던져왔다. 정국은 선배의 그런 공격적이고 고압적인 태도에 움추러들거나 또는 화가 나기보다도, 영 어이가 없어지고 말았다. 그를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학기 초, 호석에게 접근하기 위해 자신에게 다가와 이런저런 것들을 캐물으려다 그닥 유쾌하지 못한 소리나 듣고는 제게 건방지다는 소리를 하며 씩씩거리다 돌아갔던 사람들 중 하나였다. 

 

정국은 일부 선배들 사이에서 자신의 평판이 그닥 좋지 못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그 이유가 저런 선배들이 뒤에서 자신의 언동에 대해 이리저리 씹어댄 것 때문이라는 것도. 그렇기에 그가 지금 이렇게 자신에게 시비를 거는 것은, 학기 초부터 이어진 좋지 않은 감정의 연장선 때문이리라 얼추 짐작이 들었다. 

 

그러나 다만 불가해한 것이 있다면, 이제껏 그들은 뒤에서 저를 욕했으면 욕했지 이렇게까지 제게 노골적으로 시비를 걸어거나 해코지를 한 적은 없었다는 것이다. 그랬던 사람이 학기초로부터 몇 달이나 지나 기말고사가 다가오는 이 시점에 와서 갑자기 시비를 걸어오다니? 정국은 그들이 어떠한 심경의 변화를 겪어서 갑자기 자신에게 이러는 것인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그러나 동시에 그것을 생각하는 것 자체가 정국은 무척 짜증이 돋았다. 굳이 내가 이 찌질한 열폭 인생들의 심경 변화를 이해할 필요가 있을까? 이해를 할 수는 있을까? 아니, 이해를 해줘야만 하나? 뭐하러? 내가 왜?

 

더 이상 생각하기가 귀찮아져버린 정국은 무시를 선택했다. 뭔 짓을 해도 반응이 없으면 또 궁시렁대다가 알아서들 떨어져 나가겠지 싶었던 것이다. 

 

 

 

 

 

안타깝게도, 정국의 판단은 틀렸다. 한 쪽이 무시를 한다고 해서 반드시 다른 쪽이 제 풀이 지쳐 나가 떨어진다는 법은 없기 때문이다. 심지어 어떠한 사람들은 꽤나 끈질기고 집요하기까지 하다.  특히 혼자가 아닌 여럿이서 누군가를 음습하게 괴롭히며 시시덕대는 일에는 더더욱 그렇다.

 

그 이후로도 몇몇 선배들이 돌아가며 정국의 발을 걸어 넘어뜨리려는 시도가 계속 되었고, 정국은 그 때마다 특유의 반사신경으로 아무렇지 않게 그것들을 쏙쏙 피해다녔다. 그리고 그것이 오히려 불에 기름을 부은 격이었는지, 선배들의 이유 없는 해코지는 점점 심화 되어가기 시작했다. 갑자기 맞은편에서 다가와 어깨빵을 치려고 하거나, 느닷없이 뒷통수를 갈기려고 하거나, 쓰레기나 공 같은 것들을 집어던진다거나. 

 

물론 그런 것들 역시 통할 리가 없었다. 피하면 그만이니까. 그러자 이번엔 정국과 같은 반인 후배들을 압박해 유치한 짓을 벌이기 시작했다. 정국의 책상 서랍이나 사물함에 쓰레기를 넣으라고 시키고, 물건을 숨기라고 한다던가, 책상에 몰래 욕을 써놓으라 하던가. 이것만큼은 정국도 처음엔 영문을 몰라 당황을 했다가, 제 사물함에 몰래 찌그러진 우유갑과 바나나 껍질을 집어넣으려던 같은 반 녀석을 현장범으로 잡아 몰아부쳐서야 알게 된 사실이었다.

 

"그러게 너는 왜 호석 선배를 빽으로 뒀다고 그렇게 잘난척 뻗대고 다녀서는! 나라고 이런거 하고 싶어서 하는 줄 알아?! 호석 선배가 그렇게 잘났으면 선배들이 너 괴롭히니까 도와달라고 울면서 이르기라도 하던가! 우연히 너랑 같은 반인 우리들은 중간에 껴서 이게 뭔짓인데!"

 

방귀 뀐 놈이 성을 낸다고, 범죄 현장(?)을 들킨 녀석은 오히려 정국에게 큰 소리로 화를 내고는 교실로부터 도망치듯 뛰쳐나가버렸다. 

 

정국은 그가 남기고 간 말로 인해 골똘한 상념에 빠지게 되었다. '울면서 이르기라도 하던가', 라던 그 말에는 묘한 기시감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유년시절의 불쾌하고 억울했던 기억들이 우수수 떠올랐다. 마치 이리저리 뒤흔든 스노우볼 처럼. 호석이 곁에 없을 때에만 골라 꼬집히고 얻어맞고 놀림 받았던 그 기억들. 되돌아 생각해보면, 이 선배들은 점심시간이나 하교시간, 즉 정국이 호석과 함께 있을 때에는 아무 일도 없는 듯 조용히 굴었다. 정국은 이제껏 그들의 그런 행동이 단순히 호석에게 눈치가 보여 그럴 것이라 생각했는데. 사실 그들에겐 다른 의도가 있던 것은 아니었을까. 이제와서 이런 짓을 벌이는 데에도, 누군가의 지시나 교묘한 부추김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정국은 과거 어린 시절의 저를 향한 괴롭힘과 현재의 이 불쾌하고 유치한 해코지 사이에는 연결고리가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선우원.

 

그 연결고리에 부합할 인물이라면 당장 그 이름부터 떠오르는 것이 당연했다.

 

그렇지 않아도 그에게는 미심쩍은 구석이 한둘이 아니었다. 매번 그는 유년시절 정국이라는 사람은 아예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호석의 기억을 강하게 부정하고 예민하게 굴었다. 그리고 지속적이고 끈질기게 정국과 호석이 가까워진 것은 자신이 이사를 간 후에 일어난 일이라는 말을 일관적으로 반복했다. 마치 호석을 세뇌시키고 옛 기억을 덮어씌우려는 듯. 오죽하면 호석이 불안한 얼굴로 정국에게 되물어 왔을까, 원이 있었을 때도 우린 같이 많이 놀지 않았느냐면서. 게다가, 지난 번 집 앞에서 그가 저를 향해 제멋대로 뿜어내던 그 불쾌하고 역겨운 기운은 또 뭐였을까. 그것이 무엇인지는 몰라도, 어쨌든 원은 진심으로 자신을 죽이고 싶을만큼 싫어한다는 것을 아주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던 몹시 기분 나쁜 감각이었다. 어릴 때보다도 훨씬 구체적이고 노골적으로 말이다.

 

그 때를 떠올리면 반사적으로 저를 보호하듯 가로막고 섰던 호석이 연상 작용으로 떠오른다. 그리고 그 때의 호석만 생각하면 정국은 지금도 심장이 옥죄이는 듯 하다. 원이 떠나고도 한참이나 파들파들 떨어대던 호석의 마른 몸과 새하얗게 질린 얼굴이 안쓰러워서. 그리고 또 제 앞을 가로막고 섰던 호석의 행동에 미칠듯이 가슴 뛰어서. 겁도 많은 사람이 저 하나 보호하겠다고 그렇게 나선 것은, 자신을 그만큼이나 아끼고 애정한다는 것인지, 아니면 그렇게나 마냥 보호받아야할 나약한 존재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인지. 정국은 한동안이나 호석의 마음이 그 둘 중 어느 것일까 가늠하고, 그래도 전자였으면 좋겠다 상상하며 밤잠을 설쳐댔다. ...사실 후자이거나 잘 해봐야 동생처럼 애정한다는 것임을 알고는 있지만.

 

그러나 앞으로 또 이런 일이 생기고, 그 때도 호석이 저를 비호하느라 위험하게 앞으로 나서는 것을 또 다시 겪고 싶지 않았다. 원이 그 때처럼 호석을 구석으로 몰아부치고 을러대듯 함부로 하는 일도 다시는 생기지 않게 하고 싶었다. 그리고 무슨 생각으로 다른 선배들을 부추켜 제게 헤코지를 시키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대로 마냥 피하고만 있는 것도 능사는 아님을 알았다. 더 이상 어린 날의 작고 유약했던 신체도 아니거니와, 제가 어떻게든 행동을 보여야만 원 역시 어떤 식으로든 반응을 보이고 그 음험한 꼬리를 내어보일 수 있을테니까. 그 때를 노려 원의 의도를 까발리고 싶었다. 

 

호석의 곁에서 영영 떼어내 버리게.

 

 

 

 

 


 

 

 

 

 

"호석아, 너 오늘도 점심 때 전정국 끼울거냐?"

 

점심을 함께 먹는 친구들 중 하나가 등교하기가 무섭게 호석에게 다가와 대뜸 그런 소리를 했다.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릴까. 영문을 몰라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바라보자, 그는 답답하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아예 앞자리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걔 요즘, 건방진걸 넘어서 뒤에서 하극상 짓 하고 다닌다고 말 나오더라."

 

건방진. 하극상. 낯설기만 한 그 단어들을 필두로 친구의 입에서는 최근 2학년들 사이에서 정국에 대해 떠도는 이야기들이 줄줄 쏟아져 나왔다. 

 

이전부터 애가 말을 싸가지 없게 해서 평판이 안좋았는데, 네 체면을 생각해서 다들 별 말 안하고 참고 있던 애들이 많았다더라. 그랬던 것이 얘 시건방진 태도가 갈수록 점점 심해지니까, 결국 두고 볼 수 없었던 몇 반의 누구랑 누구, 그리고 몇 반의 누구가 참지 못하고 충고한다고 뭐라고 했었다더라. 그런데 전정국 이 새끼가 1학년 주제에 빈정거리기나 하고, 건방지게 들은 척도 안했다던데. 걔가 왜 그러겠냐, 그게 다 너 빽 믿고 그러는 것이 아니겠냐. 결국 걔들이 그 놈 버릇을 고쳐놓으려고 했었던 모양인데, 아 근데 전정국 이 새끼가 선빵을 쳤다더라. 다짜고짜 선배의 멱살을 잡았다던가 벽으로 세게 밀쳤다던가 뭘 집어던졌다느니 정강이를 발로 찼다고도 하고, 이건 명백한 하극상 짓이 아니냐. 걔들도 딱히 잘했다고 볼 수는 없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1학년 주제에 선배들한테 이게 말이 되느냐. 어쩌구 저쩌구. 이러쿵 저러쿵.

 

친구의 말을 묵묵히 듣고 있던 호석은 기분이 영 마뜩찮았다. 소꿉친구에 아끼는 동생이라 팔이 안으로 굽는 것 이전에, 이야기 속에는 정국에게 있어 불합리한 이야기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정국이는 말수가 적고 표현이 부족할 뿐 건방지거나 싸가지 없는게 아닌데. 게다가 이야기만 들어도 먼저 시비를 걸은 것은 걔들이 먼저였던 것 같고, 버릇 고쳐놓는다고 한 것도 보면 손도 걔들이 먼저 나간거 같은데. 그럼 선배가 뭐라고 하면 그냥 무조건 네네 대답만 해야하고, 선배가 때리면 그냥 무조건 얻어 맞기만 해야하나. 

 

호석은 외려 제가 더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전부 '했다더라', '카더라' 잖아... 너는 그럼 그 얘기 누구한테 들은건데?"
"나는 원이한테서 듣긴 했는데, 이미 얘기 다 퍼져서 모르는 애들이 없어. 전정국한테 당한 애들이 옆반에 뻔히 있는데 그럼 그게 헛소문이겠냐?"
"우리랑 같이 밥먹거나 가끔 같이 놀 때도 정국이 안그러는거 너도 알잖아. 걔가 이유도 없이,"
"그거야 네 앞이니까 그랬을거고, 그것도 너한테나 그런거지. 나도 너 아니었으면 걔가 뭐가 예쁘다고... 아무튼 나도 그렇고 다른 애들도, 그리고 원이도 걔랑 밥 같이 먹기 싫다니까, 너는 뭐 정 그렇게 걔 끼고 돌고 싶으면 둘이 먹던가. 나는 가오 상해서 그런 새끼랑은 같이 못먹겠다."

 

호석은 적잖은 당혹감과 배신감이 들었다. 지금껏 함께 밥을 먹었던 친구들은 물론이거니와 심지어 원이 마저도. 그들이 저 이야기를 곧이 곧대로 믿는다는 것이 믿기지가 않았다. 아니, 저 이야기를 듣고 고작 한 학년 위 선배라는, 얄팍한 특권 의식과 나이부심에 사로잡혀 지금까지 함께 다녔던 후배 하나를 배척하려 든다는 것에 더더욱 환멸감이 들었다. 

 

게중에서도 원에게 가장 큰 불만이 들었다. 이전부터 묘하게 정국을 달가워하지 않는 티를 내던 원이었다. 그러니 마치 이번 일을 계기로 옳타꾸나 아예 대놓고 정국을 떼어내려는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고 마는 것이다. 자신의 과대망상인지는 몰라도.

 

시작종이 치고 수업이 시작되어도, 호석은 집중하지 못하고 수업 내내 노트 한구석만 신경질적으로 깨작거렸다.

 

 

 

 

 

 

 

 

언제나처럼 급식실 앞 통로에서 호석을 기다리며 청각을 곤두세우고 있던 정국은 그들이 복도 끝에서 다가오며 하는 이야기를 듣고 저도 모르게 혀를 찼다. 저에 대한 이야기들을 하고 있었다. 그것도 부정적인 쪽으로. 아무래도 계속해서 걸려오는 시비를 더 이상 참지 않고 받아치게 된 것이, 하극상이라는 좋지 않은 방향으로 살이 덧붙여져 2학년들 사이에서 퍼져나간 듯 싶었다. 그리고 그것으로 인해 호석의 입지가 애매하게 되어버렸다는 것도. 조금 예상은 했지만서도 이렇게까지 빠르게, 그것도 이렇게까지 편향된 이야기가 퍼지게 될 줄은 몰랐었다. 결국 자신이 뿌린 씨앗이 돌아오는 것 아닐까. 정국은 지금껏 호석에게 관심이 있거나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에게 상하좌우 할 것 없이 까칠하게 굴었던 스스로의 태도를 (아주 조금) 반성했다. 

 

한동안은 호석과 점심을 함께 먹는 것을 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괜히 둘이 같이 있는 것을 다른 선배들에게 보여 호석의 입지만 곤란하게 만드느니 그것이 나았다. 어차피 기말이 코 앞이고, 시험 기간이 끝나면 얼마 안있어 여름방학 시작이다. 그 정도는 참을 수 있었다. 그런 생각으로 발걸음을 돌리는 때에, 

 

"...밥도 안먹고 어디가게."
".............형."

 

어느 새 빠른 걸음으로 다가온 호석이 정국의 팔을 붙잡았다. 어딘가 화가 난 듯도 하고, 또 어딘가 속이 상한 듯 그런 울망한 표정. 그런 호석의 팔을 뿌리치고 도망치는 것 따위 정국에게는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또 이대로 같이 밥을 먹기에도 난처한 상황임을 알기에 뭐라 대답도 못하고 뻣뻣하게 굳어있던 그 때,

 

"넌 이리로 와야지, 뭐해? 분위기 파악도 못하나."

 

뒤따라온 원이 호석의 팔을 붙잡아 거칠게 자신의 쪽으로 잡아당겼다. 우악스러운 손아귀에 중심을 잃은 몸이 끌려가듯 비틀거리고. 정국은 반사적으로 둘 사이에 끼어들어 호석을 붙들고 있는 원의 손을 잡아채 힘으로 비틀어 떼어냈다. 그것은 앞뒤 잴 것 없이 튀어나온, 거의 본능에 가까운 행동이었다. 

 

경계의 눈빛을 담고 올려다 본 원의 얼굴에 무슨 속셈인지 일순 만족한 듯한 웃음이 얼핏 떠오르고. 다음 순간, 그는 정국이 붙잡아 떼어낸 손이 아파 죽겠다는 듯 과장스럽게 흔들어댔다.

 

"야... 너 지금 내 손 후려쳤냐? 너 요즘 선배들 패고 다닌다더니, 이젠 나도 멱살 잡고 한 대 치겠다? 선배들이 만만해?! 그러게 내가 뭐랬어?! 얘가 문제라니까?!"
"............."

 

주위 학생들에게 다 들으라는 듯 대뜸 높아진 원의 목소리에, 급식실로 향하던 학생들의 이목이 단숨에 정국과 원에게로 쏠린다. 그 시선들이 제법 따가웠다. 마치 시선의 감옥에 갖힌 것처럼. 갑갑하고, 신경이 곤두서며, 어디론가 도망치고 싶은.

 

정국은 그 순간 원이 노리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대강 파악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자신을 학교 전체로부터 따돌림을 받게 만드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그 여론을 이용해 자신과 호석을 떼어내려고 하는 것이다. 아마 자신의 소문이 그렇게나 빨리 퍼지게 된 것도, 그리고 지금처럼 자신만이 발끈할 포인트를 잡아 공격적인 행동을 꾀어내는 것도, 모두 원의 계획 하에 벌어지고 있다는 확신이 강하게 들었다. 그가 이러한 말과 행동을 하는 것은 자신이 퍼뜨려놓은 소문들이 진짜처럼 보이도록 모두의 눈 앞에서 보여주고, 그들에게 정국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각인시키려는 일종의 퍼포먼스인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그로 인해 호석이 자신과 함께 있는 것이 부담스러워지도록 만드는 것이 그의 최종적인 계획의 완성일 것이다.

 

징글맞도록 음험하고 음침한 생각을 하는 사람이다. 지금 이 상황에서 호석에게 제 편을 드느냐 아니냐의 선택지를 넘기는 것은, 그것이 어느 쪽이던 원에게 유리한 결과 밖에는 되지 않는 덫이 놓여있다. 결국,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그의 계획을 역이용하는 것 외에는 답이 없다.

 

"...형이 호석이 형한테 험하게 굴었잖아요."
"뭐야?"
"느닷없이 잡아당기니까 호석이 형 넘어질 뻔 했잖아요, 방금. 친구랍시고 너무 막하는거 아니에요? 호석이 형이 무슨 물건인가, 잡아 당기면 당기는대로 이리저리 끌려가게? 지난번에도 벽에 몰아부치고 뭐라고 윽박지르더니. 가만 보면 말도 되게 이상하게 해. 호석이 형을 꼭 자기 맘대로 조종하고 싶어하는 것처럼. 왜 자꾸 호석이 형한테 이상한 말 해요?"

 

설마 정국이 말로 반박을 해 올 줄은 생각지 못했던 듯, 원의 자신만만했던 표정이 당황과 짜증으로 한껏 일그러졌다. 아마도 그는 정국이 참지 못하고 주먹을 날리거나 싸움을 걸어올 것을 예상하고 모두에게 그 모습을 폭로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을 것이다. 또는 상황을 버티지 못하고 도망치던가. 그 계획이 한 번 비틀리자 원은 눈에 보일 정도로 평정심을 잃고 제 감정대로 흥분하기 시작했다.

 

"내가 언제,"
"기억 못하는 척은 진짜 잘해. 내가 형들이랑 노는거 별로 안좋아하는 것 같다느니, 나 노는데 끼우지 말자느니. 다른 형들한테 그런 말은 왜 해요? 후배 왕따 시키고 싶어서? 그러면서 자기 과거 미화는 엄청 해대고. 꼭 인생에 자랑거리가 호석이 형 유치원 동창인거 밖에 없는 사람인 것처럼. 나랑 호석이 형 사이 이간질 하고 싶어서 그러죠? 그런다고 호석이 형이랑 제일 친해져요? 아니잖아. 그리고 초등학생도 아니고, 그런거 따지는거 너무 유치하지 않나?"

 

그 말이 원의 역린을 건드린 듯 했다. 얼굴이 순식간에 시뻘개진다 싶은 순간, 원의 커다란 손이 정국의 멱살을 붙잡고 벽으로 몰아부쳤다. 당황한 호석과 다른 친구들이 허겁지겁 말리려 몰려들었지만, 이미 머리 끝까지 화가 난 원은 오히려 힘을 더해 정국의 멱살을 틀어쥐었다. 정면에서 자신을 노려보는 원의 두 눈이 시시각각 새파랗게 변했다가 다시 원래의 검은 홍채로 돌아오는 것이, 분노로 형질이 드러나려 것을 억지로 억누르는 듯 보였다. 그런데, 고작 이까짓 도발에 이렇게까지 화가 나 형질을 발현할까 말까 한 것이라면. 원의 멘탈은 지나치게 약한걸까, 아니면 시도 때도 없이 형질을 버릇처럼 드러냈던걸까.

 

정국은 죽이 되던 밥이 되던 블러핑을 던져보기로 했다. 심증 뿐이긴 하지만, 자신에게 해코지를 해오던 선배들의 배후에는 원의 지시가 있었을 것임이 분명했다. 원이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있는 지금이라면, 허풍일지라도 들어먹힐 승산이 있었다. 

 

"아, 이제야 직접 나한테 손을 대시네. 그래, 차라리 이게 낫네요. 나랑 감정 별로 안좋은 선배들 모아서 호석이 형 이름 팔고, 부추겨서 나 괴롭히라고 시켜놓고는 뒤에서 음침하게 팔짱끼고 지켜보던 것 보다는."
"...뚫린 입이라고 무슨, 무슨 근거로 그딴...!"
"근거? 그 때 그 선배한테 그랬잖아, 내가 반격하게만 만들면 하극상으로 잘 포장해서 소문 내줄테니까 잘 건드려보라고. 내가 괜히 그 선배들 처음에 상대 안하고 내내 피해다니기만 한 줄 아나. 나중에는 아주 닥달을 하셨잖아요, 고작 그 정도로 밖에 못 괴롭히냐고. ...다들, 내 소문 누구한테 들었어요? 이야기 근원지를 찾아서 돌다보면, 이 사람일텐데."

 

원이 정말로 이 일들을 꾸민 것이 아니라면, 애초에 그는 정국의 말에서 '근거' 를 찾아서는 안된다. 그리고, 지금 이곳에는 원이 스스로 깔아놓은 판으로 인해 이 해프닝을 보려고 몰려든 학생들로 한가득이다. 그 중에는 자신이 선배들에게 꽤나 집요하고 오랫동안 괴롭힘 당한 것을 목격한 1학년들도 있고, 또한 술렁거리는 반응을 보자하면 진짜로 원에게서 자신의 소문을 들은 선배들도 꽤나 있는 듯 했다. 그렇다면 원이라는 사람이 했을 법한 말을 두루뭉술하게 풀어낸 정국의 말은, 더 이상 진짜로 일어난 일인지 아닌지는 중요하게 되지 않는다. 여기 있는 사람들에게는 '진짜'처럼 받아들여질테니까.

 

"너... 어떻게...!"
"내가 선천적으로 귀가 좀 좋아서. 기억 안나요? 호석이 형 벽에 몰아넣고 뭐라고 하던 날. 내가 어떻게 알고 갑자기 집에서 나왔는지, 사실 되게 신경 쓰였잖아. 나는 다 들었거든요. 그 때 호석이 형한테 왜 기억 못하냐고 몰아세우던 것도. 호석이 형을 미끼로 그 선배들한테 나 괴롭히라고 지시 내리던 것도...!"

 

원의 주먹이 다짜고짜 정국의 얼굴로 날아들었다. 퍽, 하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정국은 복도 위로 쓰러졌다. 입 안이 찢어진 듯 피맛으로 쓰렸다. 그리고, 정국은 자신의 블러핑이 제대로 먹혀든 것을 확신하고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무엇보다 손이 먼저 나갔다는 것은 자신이 진짜로 그런 짓을 했다는 것을 반쯤 인정했다는 것과, 분노로 인해 주변 상황을 냉정하게 판단할 이성은 남아있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과도 같다. 나머지는, 그 스스로가 자신이 벌여놓은 짓들에 발이 걸려 넘어지는 것을 기다리는 것 뿐.

 

"야, 전정국... 너 이제 제법 말 잘한다? 어릴 땐 말도 똑바로 못하던 찐따 새끼가...!"

 

퍽, 이번엔 발길질이 날아와 쓰러진 정국의 허벅지를 걷어찼다. 뒤에서 호석이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비명소리가 들렸지만, 정국에게는 지금 그것보다도 원이 스스로 뱉어낼 말들이 기대가 되었다. 이미, 그는 자신이 내뱉은 거짓말을 모두의 앞에서 실토하고 있는 중이니까.

 

"그러게 왜 애초에 말을 싸가지 없게 하고 다녀서 적을 만들어. 왜 아직도 정호석한테 진드기처럼 들러붙어서 피곤하게 만드냐고, 어?! 넌 그냥 씨발 좆만할 때처럼 나한테 처맞고 구석에 찌그러져서 찔찔 짜는게 어울리는 새끼야, 알아?!"

 

그렇지. 그가 자신을 잊었을리가 없었다. 그가 제게 했던 짓이 있는데 잊었을리가. 원이 뱉어내는 시커먼 감정덩어리의 말을 들으며 정국은 웃음을 삼켰다. 

 

"어째서 너 따위가!!! 거기는!! 내 자리라고!!!"

 

또 다시 날아온 발길질이 배에 꽂힌다. 고통을 참으며 씩씩대며 숨을 삼키는 중에, 또 다른 발길질이 얼굴로 날아오는 것이 보였다. 아, 이번건 좀 아플 것 같은데. 정국은 이를 악물고, 제 턱으로 날아들 고통을 참기 위해 눈을 꾹 감았다.

 

 

 

 

 

---짝!!!

 

 

 

 

 

걷어차일 타이밍이 되어도 날아오지 않는 발길질 대신, 고막을 째는 듯한 파열음이 귀를 찌른다. 무슨 일인가 싶어 슬며시 눈을 뜨니, 제 앞을 가로막고 선 두 발이 보였다. 시선을 위로 올리면, 익숙한 호석의 뒷모습과 그 앞으로 자신의 뺨을 잡고 주춤거리며 걸음을 물리는 원이 보인다.

 

"...선우원. 너 대체 무슨 짓을 하고 다니는거야?"
"......호석아......"

 

뺨을 한 대 거하게 올려맞고는 이성이 되돌아왔는지 원의 목소리는 안절부절 하지 못하고 떨려댔다. 원래의 인간형으로 돌아온 검은 눈동자는 정국의 앞을 가로막은 호석에게 잠시 머물렀다가, 자신을 둘러싼 무리들의 냉랭하고 적대적인 시선들 사이를 방황했다. 그런 원을 내버려둔채, 호석은 쓰러져있던 정국을 일으켜 세우기 위해 등을 돌리고 허리를 숙였다.

 

"......왜 내 말은 안믿어?! 그 새끼가 먼저...!! 어릴 때부터 대체 왜!!! 왜 그 새끼만 싸고 도느냐고!!! 너는 왜 매번 나를 배신하는건데!!!"

 

원의 악에 받친 외침은 공허함과 동시에 일방적인 집착과 자기방어로 잔뜩 찌들어 있었다. 정국을 부축해 일으킨 호석은 푸욱,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짜증과 한심함이 한껏 배어있는 숨소리. 정국은 제가 지은 죄도 아니면서 괜히 뜨끔한 마음이 들어 저를 부축해 올린 호석의 눈치를 보았다.

 

"...나 기억났어. 너 이사가기 전에 있었던 일."
"......!"
"그 때나 지금이나, 넌 참..."
"아니, 호석아, 그게 아니라..."
"...너 진짜 꼴도 보기 싫어."

 

정국은 호석의 그런 목소리를 처음 들어보았다. 사람에 대한 기대나 감정을 완전히 잃어버려, 차갑다 못해 아예 온도를 잃은 것 같은 목소리. 원을 바라보는 얼굴은 냉랭하게 굳어있어, 평소 웃음과 온화한 분위기에 감춰져 있던 날카롭고 예민한 선들이 유독 도드라져 보이는 듯 했다. 그 낯설음과 이질감에 괜히 안절부절 못하게 되는 것은 정국 뿐 만은 아닌 듯, 둘러싼 무리들 역시 쌔하니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급식실로 통하는 복도가 통채로 어딘가 무산소-무중력 공간으로 이동한 듯한, 그런 숨막히고 비현실적인 기분을 지금 이곳에 모인 모두가 느끼고 있었다.

 

그 침묵의 막을 터뜨린 것은, 호석의 눈을 똑바로 마주한 채 뭐라 대꾸를 하지 못한 채 입만 벙긋거리며 부들거리던 원이 마침내 '우와아아아아아!!!!' 하는 울분 섞인 비명을 내지른 때였다. 그리고 눈 앞의 호석을 잡아 터뜨리기라도 하겠다는 듯, 두 팔을 내뻗어 갈퀴처럼 허우적거리며 땅을 박차고 달려들었다. 그리고 그 제정신이 아닌 듯한 돌진은, 정면에서 빠른 속도로 마주 달려든 정국이 어깨로 그의 명치를 치받는 것으로 그대로 고꾸라지듯 침몰하고 말았다. 그렇게 쓰러지고도 무엇을 노리는지 계속해서 일어나 달려들려는 원을, 그제서야 겨우 상황 파악이 된 듯한 주변 무리들이 한 떼로 덥쳐 겨우 제압할 수 있었다. 제압을 당하고도 성미를 못이겨 비명처럼 아무 소리나 질러내던 원의 목소리가 모두의 고막에 잊고 싶은 기억으로 달라붙었다.

 

그렇게,
모두가 선우원에 대해 잘 알게 되었다.

 

 

 

 

 

 


 

 

 

 

 

 

 

그 뒤로 원은 학교에서 모습을 감추었다. 그는 존재 뿐만이 아니라, 모두의 기억에서도 잊혀진 것처럼 되었다. 아무도 그의 이름을 꺼내지 않았다. 그를 연상시킬 것 같은 사건이나 단어도 입에 올리지 않았다. 존재하지 않던 사람이 되었다.

 

호석은, 그 이후 안그런 척을 하지만 조금 기분이 가라앉아 보였다. 이유를 알 것도 같으면서도, 또 모를 것도 같았다. 자신이 모르는 어떠한 사건이 원과 호석 사이에 있었음은 확실하지만, 정국은 그것이 무엇이었냐고 물을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에게 원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다는 것 자체가 대단히 상처를 주는 일처럼 생각되었다.

 

정국은 자신이 만일 그 날의 원이었다면 어떻게 행동했을까, 어떤 기분이었을까 하는 생각을 종종한다. 그리고 그의 광기 어린 행동이 어쩐지 이해가 가는 것이다. 그가 호석에게 어떠한 감정으로든 집착하고 있었던 것은 명확했다. 그것도 아주 오랜 시간에 걸쳐서. 그리고 호석에게 집착하는 만큼이나, 저를 치가 떨리도록 싫어한 것 역시 잘 알고 있었다. 그랬던 그가 몇 년 만에 다시 이곳으로 이사를 왔을 때, 그 끔찍하게 싫어하는 녀석이 아직까지도 호석의 곁에 머물러 있었으니. 오죽 꼴보기 싫었을까. 심지어 자신이 하는 일들마다 방해하는 것도 모자라 결국 모두의 앞에서 죄다 폭로하게 만들어 버린 결말이다. 거기에 더해 호석에게 들은 그 마지막 말까지. 그에게 있어 그건 아마도 세상이 쪼개지다 못해 바스라져 시커먼 심연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은 느낌이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면 원이 마지막에 보였던 광기 어린 행동들이 어쩐지 이해가 가는 것이다. 자신이 만약 원이었다면, 그것으로도 모자라 온전한 제정신을 유지하지 못하고 제대로 미쳐버리지 않았을까.

 

 

 

 

 

그런 저런 생각들을 머리 속에서 굴리며, 정국은 병원에서 검사와 교육을 마친 느즈막한 시간에 학교를 등교하고 있었다. 핸드폰을 들어 시간을 확인하면, 아직 4교시가 끝나기 전. 며칠만 지나면 여름방학인데 수업 중간에 굳이 들어갈 일도 없고, 그러니 미리 급식실에 가서 호석이 내려오는 것을 기다려야겠다 생각한 정국은 화단을 따라 터덜터덜 걷고 있었다. 

 

마침, 주머니의 핸드폰이 띠로롱, 하고 문자가 왔음을 알렸다. 반사적으로 주머니 속으로 핸드폰을 꺼내기 위해 손을 찔러 넣었다가 그냥 말았다. 이 시간에 문자를 보낼 사람도 없고, 수업 중인 호석이 문자를 보낼 일은 더더욱 없으니 대강 광고 문자겠거니 싶어서. 정국은 핸드폰의 알림을 무시한 채 무심한 걸음을 재촉한다. 그리고-,

 

 

 

 

---퍽석!!!!!

 

 

 

 

정국은 제 등 뒤로 무언가 떨어져 내린 소리와 제 뒤꿈치와 종아리에 튕겨드는 파편의 감각에 무언가 싶어 뒤를 돌아보았다. 바닥에는 사람 머리통 만한 화분이 박살이 나, 그 안의 흙들과 함께 파편 조각들이 여기저기 산발적으로 퍼져 있었다. 한 두 발작만 늦게 걸었다면, 그 화분의 바닥이 아닌 정국의 정수리로 꽂혔을 것이다. 그리고 그랬다면, 이 바닥에는 화분과 흙 뿐 아니라 정국의 피와 머리뼈 조각도 파편이 되어 튀었을 것이다. 

 

본능적으로 고개를 들어 건물의 위쪽을 올려다보았다. 모두가 수업 중인 시간. 사람 그림자 하나 찾아볼 수 없었다. 그저 우연히 사고로 떨어져 내린 것일까. 그렇게 생각하기에는, 이 학교 창문에는 화분 따위 놓인 곳은 없다. 그렇다면, 누군가가 직접 준비한 화분을 위에서부터 떨어뜨렸다 것 외에는 답이 없다.

 

방금 전, 화분이 떨어지기 직전 핸드폰의 문자 알람이 울렸던 것을 기억해냈다.
만일 자신이 그곳에 멈춰서,
그 문자를 확인했더라면.
그 화분은.

 

정국은 핸드폰을 꺼내어 문자를 확인했다. 

 

 

 

 

 

 

 

[발신자 표시 제한]
위를 봐.

 

 

 

 

 

 

 


*이후 스토리 전개에 관한 투표

이후 스토리의 분기점이 되는 내용입니다. 신중한 선택 부탁드립니다...!

 

 

호석의 지금 생각은...

 

 

A. 정국이 자신에게 무언가 숨기고 있는 것이 있는 것 같아 마음에 걸린다. 

B. 이대로 끝날 원이 아니다. 전학간 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조사를 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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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편의 선택지에 대한 간략한 해설] 

A. 섣불리 건드리는건 너무 위험하다. 호석을 생각해서라도 스스로의 언동을 조심해야 할 것 같다. → 호석 납치 루트

B. 가만히 내버려두기엔 너무 위험하다. 호석을 생각해서라도 머잖아 담판을 짓는 것이 좋을 것 같다. → 현재 진행 중 

 

 

 

파... 파맛첵...

(이번편 너무 안풀려서 던지고 도망가고 싶었던 것은 안비밀...)
앞으로 두편으로 완결 예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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