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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VAGE LOVE [완결]

[국홉/(약간의)슈홉] SAVAGE LOVE (中)

by 1mpulse 2021. 7. 2.

by Impulse

 

 

 

 

 

 

"걔를 왜 그렇게까지 좋아해요? 힘들지도 않나봐?"

 

입에 담배를 문채 웅얼거리듯 민팀장은 물었다. 자판기에서 음료수를 꺼내어 드느라 그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그의 말투는 무미건조하며 관조적이었다. 그래서 오히려 분한 마음이 들었던 것 같다. 호석의 마음을 홀로 장악했으면서 그것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싶어하는 그가 내게 그런 것을 묻는 것은, 마치 사치한 행락을 즐기는 자가 가진 것이 없는 이에게 위선적인 관심을 던져주는 것과도 같다. 그가 자꾸 쿨한 척 나를 이해하겠다는 양 이것저것 물어오는 것도 싫었다. 나는 그의 이해를 바란 것도 아닌데. 호석이 바라는 것처럼 그가 노골적으로 질투를 하고 나와 멱살잡이를 했으면 차라리 속이 편했으리라. 그래서 나는 더욱 이를 악물고 담담한 척 대답을 했다.

 

"힘듭니다."

 

나의 대답에 민팀장은 끅끅대며 웃었다. 그 소리는 마치 바싹 말라 균형이 일그러진 나무 바닥이 삐걱거리는 소리처럼도 들린다. 그 웃음의 의미는 무엇일까. 동의한다는 것처럼 들리기도, 혹은 불가해함을 넘어서 어처구니가 없는 것처럼도 들리는 그것의 의미는.

 

그리고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마치 내가 지레 찔려 변명이나 설명, 여하튼 나의 마음에 대한 항변을 일장연설 그에게 늘어놓는 것을 기다리는 것처럼. 그리고 나는 그의 그런 기대에 부합할 마음은 손톱만치도 없었기에.

 

"......팀장님은 꼭 안 힘든 것처럼 말씀하시네요?"
"아니? 힘들었는데?"

 

마치 아무렇지도 않은 양 툭 던지듯 대답한 그의 말투와는 달리, 그의 표정에는 짜증이 역력했다. 마치 네가 뭘 아냐는 듯한 얼굴. 그러나 그것은 엉겁결에 튀어나온 불본의한 반응이었을까. 이내 스스로의 발끈함에 반성을 담아 쯧, 하고 스스로에게 혀를 찬 그는 옥상 난간으로 몸을 기대어 섰다. 푸흐, 폐 속에 담겨 있던 구름같은 담배 연기를 찌뿌둥한 하늘을 향해 날려보내며 민팀장은 말했다.

 

"...근데, 그것도 그냥 한 때야..."

 

 

 

 

 

 

 

SAVAGE

LOVE

 

 

 

 

 

 

 

그 뒤로도 나와 호석의 관계는 지속되었다. 나는 일주일에 한 번 그를 만나 윤기와 나눴던 대화를 전했고, 몸을 섞었으며, 호석의 바람대로 민팀장에게 그의 상태가 어떠했고 어떤 시간을 보내었는지를 일방적으로 전했다. 

 

그렇게 이 기묘한 챗바퀴는 삐걱삐걱 돌아간다. 나의 선한 거짓말이 섞인 민팀장의 이야기를 듣는 호석은 불안정한 마음을 붙잡는 듯 보였고. 나의 편파적이고 반복적이며 불필요한 정보를 담은 이야기를 듣는 민팀장은 심드렁한 척을 하면서도 내심 답답하다는 듯 내내 줄담배를 피워댔으며. 

 

그 사이에서 나는.

 

 

 

 

 

"있잖아..."

 

낮게 설정해 둔 에어컨 온도에 몸이 시린 듯 호석은 내게로 가까이 밀착해 들어오며 속삭이듯 말을 걸어왔다. 시트를 끌어올려 그의 어깨를 덮고, 그것으로도 부족할까 싶어 그의 몸을 감싸듯 팔을 두르면. 품 안의 그가 만족하는 듯 푸욱 부드러운 한숨을 내뱉는다.

 

"...윤기형이랑 나는 정말 오래 사귀었었어. 나는 오랜 사귄 만큼 내가 나름 형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거든...? 그래서 이런 일... 을 하면, 나를 혼내거나 말리기 위해서라도 형이 나한테 연락을 할 줄 알았어. 적어도  한 번이라도... 근데..."

 

연락은 오지 않았다, 라는 말을 하기 싫었던지 그는 말을 다 마무리하지 않은 채 입을 다문다. 나는 그런 그의 벌거벗은 등을 위로하듯 토닥였다. 내가 알던 호석은 그닥 충동적인 사람이 아니다. 그렇기에 '그 날'을 기점으로 이어지고 있는 나와 호석의 이 계약과도 비슷한 이상한 관계는, 그가 민팀장으로 인해 얼만큼이나 궁지에 몰렸었고, 괴로워 했으며, 또 얼마나 간절한지를 알려주는 증명과도 같다. 

 

그리고 그것은 매순간 내게 아픔으로 다가온다.

 

"형한테 연락하라고 할까요? 내가 형 대신, 왜 그렇게 형 마음을 몰라주냐며 화내줄까요? 형이 원하면 그 사람 붙잡아서 형 앞에 끌고 올 수도 있어요. 나를 이용해요. 내가... 형이 하고 싶은 건, 내가 다 들어줄게요."

 

그 말에 호석은 고개를 들어 나를 올려다 본다. 그의 두 눈에는 수 많은 갈등과 그로 인한 괴로움이 혼재되어 있었다. 내가 혹시 정말로 그 말을 민팀장에게 전했을 때의 결과에 대한 호기심, 내 말에 못이기는 척 편리하게 나를 이용하고 싶은 이기심, 어떤 것부터 내게 부탁하면 좋을까에 대한 상상. 그리고 그 마음에 거세게 반발하며 대척하는 그의 커다란 양심, 나에 대한 미안함, 그리고 스스로의 이기심에 대한 자괴감과 회의감. 그 수많은 갈등들이 그의 안에서 치열하게 경합을 벌이고 있는 것이 나의 눈 속에 훤히 펼쳐진다. 그리고.

 

"...아니야, 그러지마... 그런거 아니야... 그냥 나는..."

 

그는 마침내 스스로의 얼굴을 나의 목덜미에 묻어버렸다. 자신의 마음을 숨기고 싶은 듯. 잠깐이나마 그것을 갈등했던 스스로를 반성하고 부끄러운 듯 그렇게. 

 

이미 충동적으로 시작되어버린 우리의 이상한 관계인데, 한발작 더 잔인한 방향으로 그가 나를 이용하고 몰아간다 한들 무엇이 달라질까. 그러나 그 한발작을 더 내딛지 못하는 것이 내가 알고 있는 정호석이며, 그렇기에 나는 오늘도 마음에서 그를 놓지 못하고 고통 받는다.

 

턱 밑으로 부드러운 그의 머리카락이 간질거린다. 그의 혼란스러운 마음을 달래듯 그 머리카락을 빗질하듯 손끝으로 쓰다듬을 때, 그는 마치 혼잣말을 하듯 내게 말한다.

 

"...넌 어느새 그렇게 어른이 되었어...?

 

 

 

 

 

 


 

 

 

 

 

 

"형한테 연락 좀 해주시면 안되요?"

 

호석은 그러지 말라고 했지만, 나는 민팀장에게 그렇게 말했다. 내가 그렇게 말한 것을 호석이 달가워하지 않을 수도 있고, 내가 이렇게 말한다 해도 민팀장이 연락을 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그렇게 부탁하고 싶었다. 어쩌면 답답한 스스로의 마음을 그렇게라도 뱉어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연락을 하면 뭐가 달라지나?"

 

그리고 오늘도 담배를 꼬나문 민팀장은 나의 부탁을 그런 냉소적인 한마디로 일축해버렸다. 

 

"연락을 한다고 해서, 이미 유통기한이 다 지나서 쓸려나간 감정이 막 되살아나기라도 해? 그랬으면 진작에 걔가 정국씨를 그따위로 이용할 일도, 그리고 정국씨가 나한테 이따위로 무례하게 굴 일도 없었겠지. ...내 말이 틀린가?"

 

늘 어딘가 심드렁하고 무기력해 보이는 그의 혓바닥은 사실 제법 날카롭고 신랄하다. 그것도 듣기 싫지만 반박은 하기 힘든 정곡들만 골라서. 그리고 그의 그런 화법은 스스로의 약점이나 들키고 싶지 않은 부분들을 타인에게서 숨기고 눈을 돌리게 만드는 특유의 방어법이기도 했기에. ...역시, 나는 그가 싫었다.

 

"...팀장님도 마찬가지로 저를 이용하고 계신거 아닙니까? 직접 연락해서 또 다시 미련이나 죄책감 같은 것은 느끼기 싫고, 그러니까 간접적으로 제게 그런 메세지를 던지면서 형에게 대신 전해주길 바라시잖아요. 그러니까 매주 제가 이따위 무례한 짓을 해도 그냥 내버려두는거 아닙니까?"

 

따박따박 지지않고 말대꾸하는 나를 예상치 못했던 듯 한참을 노려보던 민팀장은 마침내, 새끼, 한 마디를 안지네, 그렇게 중얼거리며 허탈한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는 나의 말을 속으로 몇 번이고 곱씹어 생각하는지 멍하니 옥상의 콘크리트 바닥을 바라보며 한동안이나 말이 없었다.

 

"...그럴지도."

 

장고 끝에 해탈한 듯한 그의 대답이 돌아왔다. 그리고 그의 손끝에 걸린 채 몇 번 빨지도 않은 장초는 그 본연의 의무를 몇 번 이루지도 못한 채 저 혼자 멋대로 타들어가다가 결국 더러운 재털이 속으로 처박히고 만다. 그것이 아깝다는 양 잔뜩 인상을 찌푸리곤 연이어 두 번째 담배를 꺼내어 불을 붙인 그는 이번엔 자신의 폐를 시커멓게 태우기라도 하려는 듯 그것을 한껏 빨아물었다. 

 

파즈즉 파즈즉, 작은 소음과 함께 담배는 빠른 속도로 그의 숨통 속으로 타들어가고. 마침내 호흡이 부치기라도 한 듯 푸핫 짙은 연기와 함께 숨을 토해내던 그는 콜록 콜록, 마치 처음 담배를 피는 사람 마냥 연신 새된 기침을 해대며 연기를 뿜어내었다. 그리고 마지막 기침 끝에, 본심을 함께 토해내듯 그는 나에게 말한다.

 

"......나는 되게 평범하고 시시한 사람이라서."

 

흐릿한 하늘을 머리에 인 채 민팀장은 난간에 기대어 멀거니 빌딩숲을 바라보고 섰다. 뿌연 도시의 공기와 구름 낀 날씨 탓에 뿌옇게 흐려보이는 시야 속에서 그 경계선은 무척 애매모호하고 갑갑하다. 어디부터가 하늘이고, 어디부터가 빌딩이고, 어디부터가 땅인지. 

 

"정국씨 입장에선 내가 막, 엄청나게 나쁜놈이었으면 속이 편했을거야. 진짜 어디 남들 입소문에 오르내릴 것 같은 말도 안되는 나쁜놈 같이. 예를 들면... 돈 때문에 비정하게 호석이를 버렸다던가, 바람을 피웠다던가, 아니면 뭐...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어떤 의미에서는 그의 말이 맞다. 만약 그랬다면 더욱 단순하고 확실한 방법으로 호석이 그와의 관계를 끊는 것을 도울 수 있었을테니까. 동시에 어떤 의미에서는 그의 말은 틀리다. 만약 내가 차지하지 못했던 호석의 옆자리를 채운 사람이 그런 질 떨어지고 하찮은 사람이었다면. 그랬다면 나의 마음은 배신감과 함께 진작에 산산조각이 났을 것이다. 호석을 애정하는 나의 마음은, 그라는 존재에 대한 명확한 초상으로부터 근거하기에. 

 

"근데 그런게 아니거든. 그냥, 마음의 유통기한이 끝난거야. 그냥 그게 다야."

 

그리고 호석이 가장 괴로워하는 이유가 어쩌면 남들이 다 겪는 이러한 평범한 이유라는 것 역시 나에게 이중적인 마음이 들게 만든다. 그것이 특별할 것 없는 이유이기에 다행이면서도, 그 남들도 다 겪는 것을 쉽게 극복하지 못하는 그의 마음의 크기와 깊이를 상상하자면 퍽 자신이 비참해지기도 했다.

 

 

 

 

 

 


 

 

 

 

 

 

"고민이 많은 것 같았어요. 형한테 연락을 다시하는 것에 대해. 연락을 하면 마음이 흔들릴 것 같아서."
"......"
"그러니까 조금만 더 기다려보면..."
"짜증나."

 

더는 듣고 싶지 않다는 듯, 그는 둘둘 말은 시트 자락을 끌어당겨 머리 끝까지 뒤집어 썼다.

 

그 모습이 꼭 희고 부드러운 고치 같았다.

 

금방이라도 깨져버릴 듯 아슬한 그것을 나는 달래듯 조심스레 끌어안았다.

 

 

 

 

 

 


 

 

 

 

 

 

그 뒤로 민팀장이 호석에게 연락을 했는지는 알 수 없다. 전화를 했느냐며 재차 다그쳐 묻지 않았으므로. 다만 무슨 생각이었는지 어느 날, 민팀장은 퇴근하려는 나를 언제나와 같은 옥상으로 불러내었다.

 

"...오늘도 호석이 만나요?"
"예."
"으응~."

 

평소라면 담배부터 꼬나물었을 그가 오늘은 그러하지 않았다. 대신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평소보다도 아주 많이. 그것도 두 사람이 어땠었고 결국 어떻게 되었다는 이야기. 

 

그는 대체 내게 무엇을 전하고 싶은 걸까. 지난번 내가 그에게 한 말에 정곡을 찔려서인지, 아니면 호석에게 연락을 하지 않은 스스로에 대한 변호인 것이지, 그도 아니라면 그냥 나 듣기 싫으라고 내뱉는 호석과의 연애담이었는지. 알 수 없지만 결국 그가 말하는 것은,

 

"나는 사람의 감정이라는 것이 영원할 줄 알았지. 그게 뭔지도 몰랐으면서. 그냥 막연히 변하지 않을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고."

 

그런 흔해 빠진 변명, 혹은 토로.
그의 말대로 사랑이란 감정은 정말 그런걸까? 남들도 다들 그렇다던데 맺어진 적이 없는 나의 사랑은 마치 표본 속의 나비처럼 곱고 잔인하게 박제가 되어 영원히 변하지 않을 것만 같기에. 그의 이야기는 내게 배부른 소리처럼도, 비겁한 변명처럼도, 또 동시에 경험자가 베푸는 조언처럼도 들렸다.

 

그의 입에서 호석과 함께 만들어낸 누누한 추억들이 흘러나오는 것을 나는 별로 듣고 싶지 않았다. 누가 보기에도 성향이 정반대처럼 보이는 두 사람의 관계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나는 관심이 없다. 그들이 어떤 행복한 시간을 공유했고, 어떤 다툼을 하고 화해를 했으며, 결국 어떻게 헤어졌는지. 모두 나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이야기일 뿐. 그저 놀라울 것도 없고 새로울 것도 없는 상상 그대로의 사실. 시시했다. 지루했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 

 

그런 생각들과 함께 눈을 내리깐 채로 발로 지익 직 바닥의 먼지나 쓸고 있는 나의 시건방지고 노골적인 태도와는 상관 없이 민팀장의 이야기는 계속해서 이어진다.

 

"사람간의 관계를 부작용 없이 비교적 편하게 끊을 수 있는 방법이 뭐일거 같아요?"
"........글쎄요."
"안 보고 안 듣는 것. 눈과 귀에서 멀어지면 돼. 그게 가장 나아. 당장이야 엄청나게 괴롭겠지만 앞으로 살아갈 인생의 관점에서 본다면 그것도 한 때에 불과하니까.
"........"
"...그래서 나는 그 방법을 선택했고. 그리고 걔한테도 그렇게 하자고 말을 했어. 하지만 꺼진 불씨를 다시 살릴 수 있다고 믿었던건지, 아니면 길었던 관계를 끊어내는 과정에서 오는 부작용 같은건지... 걔는 계속 나를 찾더라고."

 

그렇게 그는 지금껏 호석에게 연락을 하지 않던 스스로에 대한 해명을 나에게 한다. 물론 나는 이해하지 못한다. 눈과 귀에서 멀어지는 것으로 마음이 멀어졌다면, 애초에 호석을 생각하는 나의 마음은 진작에 사그라져 없어졌어야 하니까. 

 

오히려 연락을 바라는 호석의 마음을 이해한다. 이미 고갈이 난 관계일지언정, 그것이 차갑게 단절된 후에 찾아오는 그 환상통을 견딜 수 없는 것이다. 그렇기에 어떻게든 붙잡아 다시 이어 붙이고 싶어서. 다시 붙기만 하면 뭐든 되살아 날 것이라 믿고, 또 동시에 그렇게나 괴로워하면서. 그러나, 민팀장은 그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모르지, 아마 조금만 더 견뎠으면 결국 받아들였을 것도 같아. 걔도 지쳐보였으니까.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 해결해 줄 거라 생각했던 차에... 뭐... 그것도 힘들어져 버렸지. 끊어졌다고 생각한 걔하고 나 사이에 연결이 다시 생겨버렸으니까."

 

그리고, 그때서야 깨달았다. 그가 왜 퇴근하려던 나를 불러세웠는지. 왜 굳이 호석을 만나는 날을 물어 이 모든 말을 내게 하는지. 그가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그러니까 그는, 내가,

 

"...제가 불필요하게 호석이 형을 부추기고 있다고 말하고 싶으신 거에요?"
"더 정확하게는,"

 

그는 곤란한 말을 뱉기 전에 하는 준비 운동처럼 크게 숨을 들이키고, 크흠 하고 목을 가다듬었다. 나를 똑바로 쳐다보는 그의 눈에는 이미 자신이 할 말에 대한 미안함이 슬몃 서려있다. 그 눈이 퍽이나 나를 바라보는 호석을 연상시켜서, 그의 말을 듣기 전부터 나는 이미 기분이 더러워져 버렸다.

 

"정국씨 때문에 걔가 힘들다는 말이야. 잊지 못하게 만들고, 그렇다고 다시 붙지는 못하고."

 

결국은 내 탓을 한다.
나 때문이라 책임을 떠넘긴다. 

 

힘들어 할 것을 알면서도 자신만의 논리를 이유로 길었던 두 사람의 관계를 하루 아침에 단절시킨 그는, 그것도 한 때 지나갈 고통이라고, 잘 참고 견디면 언젠간 잊혀질거라고, 자신도 참고 견디는 중이라며 그렇게 외로움의 한가운데로 호석을 밀어넣었다. 그 속에서 살기 위해 허우적 거리던 이는 우연히 내 손을 움켜쥐었고, 이제는 나도 함께 그 속에 잠식되어가는 중인데. 그런 내게, 호석이 자발적으로 고통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원인이 나 때문이라 한다. 그 모든 것을 내 탓이라 한다.

 

비겁한 이기주의자.

 

"자기 생각 밖에 안해요? 빨리 잊고 싶으니까 형 연락도 일방적으로 차단해버리고, 만나달라고 해도 못 들은 척 무시를 하고. 그러다 내가 나타나니 이제껏 간접적인 거절 수단으로 편리하게 이용하셨으면서, 이제는 제 탓이라고까지 하시는데. 대체 왜 그러는 겁니까, 예?"
"...정국씨 때문이라고 한 내 말은 그 뜻이 아니라."

 

허이고오, 답답한 듯 한숨 섞인 타령 소리가 그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꼭 세상 다 살은 늙은이 같이. 그것만으로도 모자랐던지 결국 내내 참았던 담배를 품에서 꺼내어 불을 붙이고는 한숨 대신 짙은 연기를 허공으로 뻑뻑 흩뿌려댔다. 그 담배 냄새가 매캐하니 독하다. 잔뜩 인상을 찌푸린 채 연기의 장막을 연거푸 만들어내는 그의 말은, 그것보다 더하다.

 

"...아직도 너가 우리 둘 사이에서 이용만 당하는 피해자라고 생각하는건 아니겠지."
"이젠 저를 가해자라고 몰아가십니까?"
"솔직해지자... 너 정말로 호석이한테 내가 어떤 말을 했는지, 어떤 반응이었는지 똑바로 전하긴 했어? 아니라면 왜 그랬지? 그것도 걔를 위해서 그랬다고 할 참인가? 하루 이틀이어야 그것도 그렇구나 하지. 걔를 위하는게 뭔데? 거짓말로 꾸민 답도 없는 희망만 계속해서 주입 시키는거? 뭐냐고. 그래서 니가 원하는 결과가 뭐야?"

 

속이 뒤틀린다. 그 자리에 있지도 않았으면서 내가 호석에게 어떻게 말했는지를 훤히 본 것처럼 그는 말한다. 당신이 뭘 알아. 그의 주제 넘는 아는 척이 뱃속을 쾅쾅 치받게 만들면서도, 동시에 자신이 지금까지 뱉어놓은 하얀 거짓말들이 푹푹 심장을 찔러댄다. 

 

"...제가 똑바로 전했는지 아닌지,"
"거짓말을 했는지 안했는지는 네가 말하는 호석이 반응 들으면 알아."

 

더 이상 직장 선배이자 상사로서의 면피는 집어치운 것인지, 나의 어설픈 변명을 쳐내며 받아치는 그 말이 마치 송곳처럼 날카로웠다. 게다가 마치 호석에 대해 다 안다는 듯한 저 말투. 악이 받친다. 당장 그의 말을 반박하고 입을 다물리게 하고 싶었다.

 

"왜 희망이 없다고 단언해요? 아닐 수도 있잖아요. 팀장님도 형 다시... 다시 만나면...!"
"위선적인 잡소리 좀 집어치워. 그거 아닌거 진작에 알고 있었던 주제에. ...야, 너가 거짓말 한 이유가 뭔지 알려줘? 넌 그냥, 호석이랑 계속 붙어먹고 싶으니까 그런거야. 호석이가 나에 대한 감정을 완전히 정리하면 넌 걔하고 만날 명분이 없어지니까. 그렇다고 너 좀 받아달라 들이댔다간 또 차일 것 같으니까 무서워서 말은 못하고. 그런 주제에 희망은 씨발, 지랄하네. 자기만 불쌍한 피해자인 척 염병 떨지마. 우리 셋 다 똑같은 새끼들이니까."

 

치솟아 오르는 울분을 참지 못하고 손이 튀어 나갔다. 양 손아귀 한가득 그의 와이셔츠 멱살이 그악스럽게 쥐어진다. 지근거리에서 그의 입에 물린 지독한 담배 연기가 코를 찌른다. 한심하다는 듯 나를 쏘아보는 그의 시선이 폐부를 찌른다. 나는 어금니를 으스러질 듯 악물었다. 

 

그의 말이 옳다. 나는 알고 있었다. 그에게 남는 것은 더 이상 되살릴 수 없는 그 마음의 퇴적층 뿐인 것을, 나는 진작에 알고 있었다. 처음 호석에 대한 이야기를 그와 나눴을 때부터. 

 

동시에 그의 말에 지고 싶지 않았다. 그것을 인정해서는 안되었다. 호석만을 위하여 행한 나의 말과 행동에 위선이라는 딱지가 붙어서는 안된다. 내가 거짓말을 한 이유는 오롯이 호석을 위로하기 위한 것. 또 다시 내 마음을 거절 당할 것이 겁난다거나, 그를 잊는 노력을 해야할 미래를 두려워하기 때문이 아니다. 아닐 것이다. 민팀장의 말이 진실이어서는 안되었다. 그의 말은 틀려야만 한다. 아니어야만 했다. 나는...

 

"지금까지는 몰랐나봐? 그럼 이제는 알았겠네. 앞으로 어떻게 해야할지도."

 

빈정대는 말과 함께 툭하니 쳐내는 그의 손에 멱살을 틀어쥐고 있던 나의 손은 쉽사리 풀려나간다. 무슨 일이라도 있었냐는 양 흐트러진 넥타이와 옷 매무새를 무심하게 다듬은 민팀장은 입에 물고 있던 담배의 마지막 한 모금을 쭈욱 빨아들였다. 그 담배 한 모금에는 무엇이 담겨 있을까. 나를 굴복시킨 것에 대한 승리감? 제 말로 인해 스스로의 마음에 혼란을 떠안은 이에 대한 연민? 이것으로 호석과의 관계가 진짜 끝임을 결론짓는 후련함? 

 

분했다. 분하고 또 분했다. 너무나도 분했다.

 

먼저 갑니다, 정국씨, 그가 그런 말을 흘렸던 것도 같지만 내 귀에는 도시의 소음들과 섞여 들려온 바람 소리나 다르지 않았다.

 

그 뒤로 한참이나 나는 컴컴한 빌딩 바닥만 내려다보며 움직이질 못했다.

 

호석에게서 어디냐는 연락이 올 때까지, 움직이질 못했다.

 

 

 

 

 

 


 

 

 

 

 

 

"오늘 많이 바빴어? 왠일로 늦었어?"
"......예, 좀... 예..."
"안색이 별로 안좋아보여. 괜찮아?"

 

호텔방 문을 열어 나를 맞아들이며 호석은 그렇게 걱정스러운 안부를 묻는다. 우울한 마음이 그렇게나 티나는 얼굴이었을까. 조금 부끄러웠다. 마음을 써주는 그의 말에 금새 기분이 나아져 조금 과장스럽게 괜찮은 척 익살을 부리니, 까르르 그에게서 터져나오는 부드러운 웃음 소리가 방 안을 채운다. 그 웃음에 음울했던 마음이 새삼 밝아지는 기분이다. 저도 모르게 마찬가지로 입가에 웃음이 걸린다.

 

"...? 너 셔츠에 그거 뭐야? 검댕이야? 뭐지?"
"예? 뭔데요?"
"여기. 뭐야? ...빵꾸 났는데?"

 

호석이 재밌다는 듯 손가락으로 가르키는 곳을 내려다보니 셔츠 가슴자락이 아주 작은 그을린 구멍이 나 있었다. 아까 민팀장의 멱살을 잡아 채었을 때, 그가 피우던 담뱃재가 떨어지며 셔츠를 태운 듯 했다.

 

"아... 아까 민팀장님이 피던 담뱃재가 날아와서 이렇게 됐나봐요. 오기 전에 이야기 하느라..."
"...........형 담배 피워?"
"예? ..........예, 에..."

 

그의 질문에서 무언가 싸한 느낌이 들었다. 무언가 잘못된 느낌이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몰라도.

 

영문을 몰라 웅얼거리는 나의 대답에 호석의 표정이 묘하게 굳어진다. 그는 호석과 함께였을 땐 담배를 피지 않았던걸까? 그냥 담배피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아서 그런걸까? 아니면 담배에 관해 무언가 안좋은 기억이 있는걸까? 무엇이 정답일까?

 

"많이 피워?"
"........어... 요즘은, 좀... 그런 것 같아요."
"...요즘... 응..."

 

상황을 납득하는 듯 아닌 듯 애매한 그의 말과는 달리 호석의 표정은 심기가 불편한 듯 샐쭉해져 있었다. 그런 그의 표정에서 나는 감히 정답에 대한 힌트조차 알아낼 수 없었다. 무엇 때문일까. 그것을 묻고는 싶은 한 편, 괜히 그것을 물었다가 되려 그의 기분을 상하게 하고 싶지는 않았기에. 그저 그의 눈치를 보며 안절부절 하는 것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 

 

그렇게 그는 잠시간 무언가에 골몰한듯 말이 없어졌다. 마주선 내 손은 꼭 붙잡은 채로. 

 

괜찮은걸까, 걱정스러운 마음에 그의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니, 그 시선이 눈치가 보였던지 그는 내게 민망스러운듯 웃어보였다. 이내 고개를 흔들며 아무것도 아니라고, 그렇게 붙잡은 손을 잡아 나를 이끌며. 

 

"...그래서 왜 늦었어? 무슨 일 있었어?"

 

그렇게 사근한 말투와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어오는 그가 기분이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가늠하지도 못한 채, 나는 그저 그의 손길을 따른다. 머리 속에선 여러가지 복잡한 생각들이 떠오르고 가라앉기를 반복하면서. 민팀장과의 이야기를 어떻게 전해야 할까. 그와 나눴던 이야기들을 복기하며 추려보아도, 그 답은 쉽사리 나오지 않는다. 그 이유는...

 

"팀장님이 퇴근하는 저를 붙잡아서..."
"...............응."
"형이랑 어떻게 사귀다 헤어졌는지 나한테 이야기를 했어요. 그리고..."

 

그래. 그 다음이 문제다. 그는, 여지 따윈 없이 모든 것이 끝이라고 했다. 내가 호석을 힘들게 만든다고 했다. 내가 그것들을 알면서도 거짓말을 한다고 했다. 내가 이용 당하는 척, 사실은 이용하고 있는 위선자라고도 했다. 그리고... 이제부터 어떻게 해야하는지도 알지 않냐며 반문했다.

 

어떻게. 감히 이 말들을 어떻게 그에게 전할 수 있을까. 이 말들을 들은 호석은 어떻게 반응할까. 지금까지 미련이 남은 것처럼 말했던 것은 그럼 다 뭐였냐며 내게 반문할까? 실망할까? 아파할까? 모든 것은 끝났고 마음은 정리되었으며 나의 쓸모는 다 했으니 이제 곁에서 떠나라 할까? 나 때문에 정말로 더 힘들었다며 원망할까? 나를 거절할까? ...그렇게 또 다시 그가 없는 세상 속으로 돌아가야만 하는걸까.

 

 

 

 

이런 것들을 걱정하며 주저하는 나는.

 

"...팀장님은 자기도 힘들다고 했어요."
"......그래?"

 

그 걱정 너머 제 마음의 아픔과 외로움을 떠올려 버린 나는.

 

"그 때, 그렇게 하는게 아니었다며 후회하는 것 같았어요."
"...............정말?"

 

이렇게 또 다시 그의 마음을 안심시키고 연장시키려 거짓말을 내뱉어버리는 나는.

 

"나를 불러내서까지 그런 말을 하는 걸 보면, 형을 많이 그리워 하나봐요."
".................................."

 

 

 

 

민팀장은 옳았다.

 

나의 위함은 위로를 가장한
위선이며
육욕이며
욕망이자
미련이다.

 

 

 

 

 

 

 

 

 

 

 

 

"너. 왜 나한테 거짓말해?"

 

 

 

 

 

 

 

 

 

 

 

 

 

 

 

 

 

그가 내게 화를 냈다. 

 

잡고 있던 손을 뿌리치고, 내 가슴팍을 힘껏 밀어내며, 나가라며 소리쳤다. 매섭게 뜬 두 눈 가득 눈물을 맺혀서는, 그것조차 수치스럽다는 듯 거칠게 팔로 문질러 닦으며 내게서 시선을 거두어갔다. 자리에 못박힌 듯 서 있는 내게서 최대한 멀리 떨어지고 싶은 듯 침대 머리 맡 모서리까지 도망을 쳐, 한껏 몸을 웅크리고는 이제는 미동조차 없다. 

 

그렇게.
그는 나를 단절시켰다.

 

심장이 지글지글 타버릴 것 같았다. 변명이던 사과던 내뱉고 싶은 목구멍은 꽉 막힌 듯 아무 말도 뱉을 수 없었다. 입을 열면 쇳소리를 닮은 오열이 터져나올 것 같아 이를 악물고, 흔들리는 몸을 지탱하려 화장대에 기대어 서서는. 제 손바닥이 손톱으로 패일 정도로 주먹을 힘껏 그러쥐어 이 마음의 고통을 분산시키려 애를 써본다. 이 모든 것은 자신이 그를 위한답시고 뿌린 얄팍한 거짓말의 결말이다.

 

그의 말을 따라 이 방에서 나가 그가 보이지 않는 곳까지 도망을 쳐 펑펑 울어버린다면 속이라도 시원할까. 당장 술집으로 달려가 오늘은 인생 최악의 날이니 모든 것을 잊자며 깡소주를 나발이라도 불면 모든 것이 없던 일처럼 될까. 하늘로 날아오르듯 한강 다리에서 단숨에 뛰어내린다면 모든 이의 기억 속에서 사라질 수 있을까. 

 

그 모든 생각을 하고서도,
나는 그를 떠날 수 없었다.

 

 

 

 

 

 

 

"...가라고 했잖아."

 

시간은 얼마나 흘렀을까. 느끼기로는 영겁의 시간이 흘러 몸을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 목소리는 어떻게 내야 하는지조차 잊은 듯 부자연스럽기만 한데. 그도 역시 그러했을까, 뭉툭해지고 낮게 갈라진 목소리가 퉁명스럽게 나를 건드렸다.

 

"............"

 

당신을 혼자 두고 어디를 가겠는가. 그렇게 입을 벌렸다가도 먹먹한 가슴이 목구멍을 가득 채워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한채 되려 다물었다. 차마 그를 올려다보지 못한 시선이 바닥에 꽂힌 채 먹먹하니 어른거린다. 그마저도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아 고개만 작게 도리질 쳤다. 꼭 떼를 쓰는 어린애처럼.

 

"왜? 섹스로 이번주 댓가 안 치른 거 때문에 못가? 그럼 빨리 할 거 하고 가. 손이던 엉덩이던 대줄테니까 너 맘대로 하고 가라고!"

 

날카로운 정을 심장 한가운데 가져다 대고, 그것을 커다랗고 무거운 망치로 쾅, 쾅, 쾅, 그렇게 세게 내려 찍는 것 같았다. 그 고통을 따라 목구멍을 한가득 메우고 있던 감정이 와아악, 새된 비명과도 같은 울음소리로 터져나왔다. 엉망일 것이 뻔한 얼굴을 가린 두 손바닥이 제가 흘린 눈물로 잔뜩 젖어버렸다. 그 쏟아지는 샘물 같은 눈물은 손목을 타고, 팔꿈치 끝에 맺혔다가, 결국 바닥으로 떨어진다. 

 

누군가 지금 나의 가슴을 열어 그 안을 들여다 본다면, 잔인하게 매도 당해 피투성이가 되어버린 나의 마음이 그 안에서 굴러다니고 있을 것이다. 호석은 알고 있다. 내가 지닌 그를 향한 사랑이 그런 비열하고 상스럽고 싸구려 같은 감정 따위가 아님을 알고 있다. 그것을 알고 있음에도 그런 가혹하고도 무자비한 말로 내 마음에 상처를 내려는 그가 미웠다. 원망스러웠다. 분이 치밀어 올랐다.

 

뱉을 수만 있다면. 입으로 이 고통스러운 사랑 따위 모두 토해낼 수 있다면. 그 뱉어낸 감정 따위 땅바닥에서 더럽게 구르도록 내버려둔 채 모든 것을 잊을 수만 있다면. 그럴 수만 있다면.

 

"......사랑해요, 형...!"

 

내뱉어 없애버리고 싶었다. 이 마음도, 나도, 당신도, 내가 뱉은 거짓말도. 이루어 질 수도 없고 품을 수도 없는 사랑이라면 모두 토해내 버리고 공중에서 산화되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버리길 바랐다. 내가 당신에게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나 따위를 왜 사랑해? 나 같은걸 왜 사랑해! 이 멍청아!"

 

귀에 꽂히는 그의 목소리가 나의 목소리와 닮아 있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억울하고 답답하고 미안한 마음이 눅눅한 눈물에 섞여 멋대로 입 밖으로 튀어나온 듯한 그 목소리가.

 

방금 전까지 내게 그런 밉살스럽고 독한 말을 내뱉은 그가, 이제는 한껏 자신을 비하하는 말로 자신의 존재 가치를 폄하하려 드니 속이 잔뜩 비틀려온다. 내겐 한없이 소중하기만 한데. 가장 아름답게 빛나기만 하는데. 세상에 당신 같은 사람은 또 없는데. 없어서 내가 이렇게나 아픈데. 그런 그가 스스로를 비하하는 것이 억울했다. 속이 상했다. 너무나도 서러웠다. 

 

이런 멍청한 내가 그에게 해 줄 것은,
앵무새처럼 바보같이 되풀이 되는 그 말 뿐.

 

 

 

 

 

 

"...사랑해요... 형, 사랑해요... 사랑해요..."

 

 

 

 

 

 

호석은 울음을 터뜨렸다. 

 

뿌연 시야 속으로 무릎 사이로 고개를 파묻고 두 손으로 귀를 막은 채 울고 있는 그의 모습이 보인다. 

 

나는. 그를 사랑하기에 다가가 그를 위로하고 싶지만, 그를 사랑하기에 감히 다가가지 못하는 나는. 여전히 화장대에 기대어 선 채 잔뜩 웅크러진 그를 바라보며. 

 

내 귀로 들려오는 울음소리를 따라 가만히 숨을 죽이고.

 

눈물로서 그의 아픔에 마음을 공명한다.

 

 

 

 

 

 

이렇게나 아픈데도,
나는 여전히 그를 사랑한다.
사랑한다.

 

 

 

 

 

 

 

 

 

 

 


2021.06.30.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느라 탈고하기 너무 힘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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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VAGE LOVE (中)

by Impulse "걔를 왜 그렇게까지 좋아해요? 힘들지도 않나봐?" 입에 담배를 문채 웅얼거리듯 민팀장은 물었다. 자판기에서 음료수를 꺼내어 드느라 그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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